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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한해 마지막 날 챙겨야 할 것

#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쉼보르스카 시 '두 번은 없다' 중에서

# 시간은 연속적 흐름인 것을, 우리는 툭툭 끊었다. 끝과 시작의 탄생.



끝은 희망차고 권태롭다. 그 상반된 얼굴을 동시에 품은 한 해 말일(末日), 그 본색은 후회다.

되돌아보면 후회가 많은 것이 우리네 삶이다. 기 죽지는 마라. 제대로 살았다는 거다. 후회가 있어야 삶의 모든 행위에 의미가 있다. 후회할 때, 뿌연 삶의 덩어리가 윤곽을 치고 또렷이 다가온다. 그 사이 사이 희망이 비집고 나온다. 오늘 작성하는 '후회 리스트'는 내년의 희망 리스트다. 후회는 뒷걸음이 아닌, 변화의 밑거름.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후회로부터 멀어진다. 선택할 것도, 목표로 삼을 것도, 도전할 것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서 일하는 한 의사는 "참 이상하죠?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죽으면서 후회하시는 분이 별로 없어요"라고 말한다.

오늘 챙겨야 할 것은, 후회다.

# 끝에 몰리면 다급해진다. 포모(FOMO)증후군.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나만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아서 소외되고 고립될지 모른다고 느끼는 공포감이다. 제품의 공급량을 줄여 구매 욕망을 부추기는 마케팅 기법으로 쓰인다. 한정 수량, 매진 임박으로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들.

조급함은 행복과 등지는 성향이다. 오늘 급하게, 꼼꼼히 적은 내년 계획은 '불행 리스트'이기도 하다. 할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으로 삶의 질을 한결 더 높일 수도 있다. Think Different의 스티브 잡스는 "집중이란, 집중할 일에 '예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좋은 아이디어 수백 개에 '노'라고 말하는 게 집중이다. 실제 내가 이룬 것만큼, 하지 않은 것도 자랑스럽다. 혁신이란 고만고만한 생각 1000가지를 퇴짜 놓는 것이다"라고 했다. 삶의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오답은 용케 다들 알고 있다. 좋은 삶은 대단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멍청함이나 어리석음, 유행 따르기를 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오늘 챙겨야 할 것은, 삶의 오답이다.

# '스마트 시대'는 심심함을 없앴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사람은 모두가 바쁘다. 일을 하다가도, 회의할 때도, 화장실에서도, 잠자기 전에도, 신호대기 차 안에서도, 걸으면서도 심지어 여행지에서도 바쁘다. 특별히 일궈내는 창조적 성과는 없다. 검색의 시대, 생각은 반역이 됐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을 보고 "턱을 괴고 있는 오른손을 왜 자판에 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를 일이다.

옛날 철학자, 작가, 화가, 음악가는 그 짧은 인생 동안 어떻게 그런 묵직한 지식과 감동을 일궜을까. 심심했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이리저리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빈둥빈둥 심심해야, '심심(心心)'하고 또 '심심(深深)'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두커니 멍하고 있는 시간은 때론 격렬한 창조의 순간이다.

오늘 챙겨야 할 것은, 심심함이다.

# 인생은 B와 D 사이 C다.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 Choice(선택). 선택은 좋은 후회를 낳고, 최고의 선택은 때론 안 하는 것이다. 한해 마지막 날, 하루종일 심심해야 한다.

# 쉼보르스카는 노래한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이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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