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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중생과 도인의 차이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LA중앙일보] 발행 2019/01/08 종교 26면 기사입력 2019/01/07 19:09

대종사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근본 되는 기술은 인화(人和)하는 기술이라 하셨고,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인연복이라고 하셨다. 정치나 사업, 종교 활동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모임이나 행사를 준비할 때조차도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든가, 함께하는 사람들과 인화하지 못하면 일의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는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녀노소 인종을 불문하고 '인간관계'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유념(有念)할 자리에서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無念)할 자리에서 무념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셨다.

"중생들은 열 번 잘 해준 은인이라도 한 번만 잘못하면 원망으로 돌리지만 도인들은 열 번 잘못한 사람이라도 한 번만 잘하면 감사하게 여긴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에게 많은 은혜를 베푼 사람이라도 한두 번만 서운하게 대하면 안면을 바꾸는 것이 보통의 우리들이다. 이것이 남에게 받은 은혜를 유념하지 못하는 예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인연 따라 정신, 육신, 물질을 베푼다. 어느 경우든 베푸는 것이 해가 될 리는 없다. 문제는 내가 남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관념과 상(相, 집착으로 인한 잘못된 견해)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어 놓고 그 관념과 상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혹 그 은혜를 몰라주거나 나아가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도 하게 되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몇 배나 더하게 되어 작은 은혜로 도리어 큰 원수를 맺게 된다. 선을 닦고 복을 짓는다고 한 행동들이 '관념과 상' 때문에 오히려 죄로 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달마(達磨)께서 '응용 무념(應用無念)을 덕'이라 하시고, 노자(老子)께서 '상덕(上德)은 덕이라는 상이 없다'고 하신 이유이다.

유념 보시는 거름을 위에다가 흩어 주는 것에, 무상 보시는 거름을 한 후에 묻어 주는 것에 곧잘 비유된다. 위에다가 흩어 준 거름은 그 기운이 흩어지기 쉽지만, 묻어 준 거름은 그 기운이 오래가고 든든한 법이다.

정신, 육신, 물질로 베푸는 일(보시)은 종교를 막론하고 장려된다. 불가에서도 보시는 복을 짓는 자비행일 뿐만 아니라 지혜를 밝혀 깨달음에 이르는 중요한 수행으로 여겨진다. 보시를 하되 무념보시를 해야 한다.

은혜를 베풀고 무념 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사상(四相, 네 가지 큰 집착)이 다 떨어지면 곧 부처라 할 만큼 무엇에든 착심을 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 스포츠회사 광고 문구에 '저스트두잇(Just Do It)'이란 것이 있다. 무엇인가를 하되 '그냥' 하는 것이다. 은혜를 베푼 후 '은혜를 베풀었거니 하는 생각을 없게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태연히' 행하라는 말도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도저도 어려우면 좋은 일이나 선행은 깨끗이 잊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남에게 받은 것은 철저히 유념하고 남에게 베푼 바는 철저히 무념해서 주위 인연들과 인화하고 화합하는 편안한 새해가 되길 염원 드린다.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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