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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생활] "너희가 퀸을 알아?"

오래 전 클라이언트와 함께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GWC라는 비영리단체에 간 적이 있다. GWC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히스패닉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해서 수많은 한인 고용주들을 대상으로 각종 노동법 클레임을 제기한 단체다. 지금은 그 세력이 많이 시들어졌지만 몇 년 전에만 해도 이 단체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는 봉제업 종사 한인들이 아주 많았다. 당시 GWC는 필자와 클라이언트에게 저녁 늦은 시간에 자기네 본부에 불러서 노동법 클레임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다. 그렇지만 정작 가보니 알지도 못하는 다른 히스패닉들이 수십 명이 몰려들어서 클라이언트에게 왜 임금을 체불 했냐고 성난 목소리로 따지며 우리의 자아비판을 요구하는 험악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필자는 GWC 관계자에게 클레임을 제기한 종업원을 제외한 외부자들이 나가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강력하게 요청했고 결국 우리를 인민재판 하려던 히스패닉들은 썰물처럼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필자는 "인민재판 원조인 우리 한인들 앞에서 무슨 생쇼"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30년도 더 전인 대학 입학 후 남녀 공학을 처음 맞아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신림동의 허름하고 냄새나는 중국집에서 열린 과 행사에서 평소 갈고 닦은 팝송을 부르다가 선배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당했었다. 당시는 학교 축제에 송창식을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운동권 문화가 강세였기 때문에 팝송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부르주아 정신을 대표하는 금지곡이었기 때문이다.

운동권의 이런 학내 행사 검열은 군부 정권의 '보헤미안 랩소디' 금지곡 선정과 더불어 우리의 청년 시절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물론 당시는 민주화가 최선의 가치였기 때문에 그 목표를 시행하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취미는 사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과 행사에서 팝송을 부른 경우 나중에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왜 '아침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고 어울리지 않게 '호텔 캘리포니아'나 '스테어웨이 투 헤븐'을 불렀는지에 대해 자아비판 성격의 고백을 강요받곤 했다.

금지곡으로 선정한 군부 정권이나 과 행사에서 팝송을 금지한 운동권 모두를 같은 비중으로 비판하는 양비론을 펼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원나라 대 명나라, 동인 대 서인, 노론 대 소론, 남한산성에서 척화파 대 주화파, 구한말 개화파 대 척사파 대결구도를 지나서 인민군 대 국군, NL대 PD, 동교동파 대 상도동파, 친박 대 비박, 촛불혁명 대 태극기부대, 친문 대 반문, 이렇게 수 천 년 동안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서 한국은 너무나 많은 개인의 자유를 빼앗겼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는 목숨을 걸고 방어하겠다"라고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광화문 한복판에 북한 인공기도 날릴 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있는 한국이 북한보다 우월한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본다. 표현의 자유는 공기처럼 소중한지 모르다가 그 자유를 빼앗기면 비로소 그 소중함을 모르게 된다. 지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눈물을 흘리는 50~60대들은 '응답하라 1988'처럼 당시에 향유하지 못했던 자유에 지금 와서 눈물로 응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14년 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어서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빽판(LP 복제판)을 사서 어렵게 들어야 했던 어처구니없던 역사를 모르면서 여전히 표현의 자유 등 각종 자유들이 억압받는 현실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너희가 퀸을 알아?"


김해원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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