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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Resolution 2019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고희古稀와 결혼 40주년, 그리고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돼지띠의 해까지 겹쳐 여러 의미에서 불 때 특별한 해가 될 것 같다.

2017년 새해를 맞으면서 결심하고 계획했던 ‘고희 기념 자전 에세이’ 원고를 끝내고, 올 1월부터 교정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기에 가슴이 벅차고 기쁘다. 신년 계획 중 하나는 한국을 방문하여 지나온 삶의 여정에서 나에게 지혜와 열정을 심어준 은인들을 만나는 일이다.

노년에 경계하여야 할 것들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소노 아야코의 저서 ‘계로록戒老錄’에 보면 “나의 생애를 극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이야말로 드라마로 쓸 만하다고 떠벌리고 다니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판한 책이 과연 국회도서관이나 공립 도서관에 보관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라고 지적한 글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서전을 쓰는 세상이 되다 보니 그것을 경계하라고 쓴 글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이 드라마 같아서도 아니고 국회 도서관에 비치되기를 바라서도 아니다 다만 지인들과 나누고 싶어서 한 편 한 편 지나온 삶을 글로 옮겼다. 글쓰기를 했던 지난 2년간의 시간여행은 참으로 행복했다.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사람들의 삶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평범한 내게도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없진 않았구나 혼자 감동하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자전 에세이를 써보겠다고 했을 때 아내가 적극적으로 말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안 되는 벗에게조차 다 보여주지 못한 속내나, 혹여 부끄러울 수도 있는 삶의 단편을 드러내는 것이 괜찮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글은 쓰되 지인들에게는 보여주지 말고 자식들에게만 삶의 지표로 삼도록 하자고 제언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동안의 삶의 여정에서 지혜와 용기와 열정을 심어준 가족과 친구들 및 동료들에게 부족한 글이지만, 고희 기념 선물 겸 감사를 전하고 나와 같이했던 아름다웠던 날들의 추억을 소환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 땅에서 살아갈 쌍둥이 아들과 손주에게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해 주고 싶었다.

솔직히 나는 학창시절 소심한 성격에다 성적도 별로라서 눈에 띄는 학생이 못되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동기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니기에, 지인 중에서는 평범한 내가 책을 낸다고 하면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나를 드러내기 위한 공명심도 아니고 교만은 더욱더 아니다. 오히려 겸손의 발로發露이며 내가 누군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성찰하며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글 쓰는 재주가 배운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나아질 리는 없겠지만, 글공부 첫날 선생님의 “자전 에세이는 자기 성찰을 하면서 진솔하게 작성해야 한다. 글쓰기를 통해서 그동안 받았던 내면의 상처를 치유 받고 남에게 준 상처와 화해하게 된다"는 말에 매료되어 평범한 글이지만 연신내에서 뛰어놀던 10살 유년시절로 되돌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70 평생 인생 행로를 되돌아보며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2017년 1월 13일, 첫 번째 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45번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달라스로 가던 중 함정 단속을 하던 경찰차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제한속도 65마일 구간을 83마일로 운전했다는 티켓을 받고 나니 내 잘못은 생각지 않고 "13일의 금요일" 희생양이 된 것 같아 속이 상했었다.

달라스에서 강의를 듣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반대한 이유는 장거리 운전 때문이었다. 당일치기로 왕복 540마일을 운전해야 하는데 70이 가까운 나이에 건강에 무리가 올 뿐만 아니라 혹여 사고라도 나면 자서전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말렸다. 그런데도 어렵게 가족의 동의를 구하고 집사람과 같이 갔던 첫날 그런 일이 생기고 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선의의 액땜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지난 2년간 무사고 운전으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시골집 부뚜막 한편에 늘 소금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묵묵히 주어진 일을 감당해낼 때마다 그 항아리가 떠오르곤 했다. 음식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처럼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여기까지 달려온 나 자신에게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커피 향은 급했던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원고를 보내고 모처럼 햇살 곱게 퍼지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애인을 기다리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간을 기다릴 것이다. 올해도 순항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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