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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인생을 건 모험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1/12 레저 9면 기사입력 2019/01/11 17:03

어젯밤 후배 부부의 라이드를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 부부는 모두 유명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주목 받게 되었는데, 연주가 늘어나게 되자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일이 잦아졌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결국 이 부부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 최대한 서로 붙어 다니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연주 일정이 확정되면 다른 한 사람이 일을 포기해서라도 여행에 함께했다. 아내가 남편 연주를 따라가기도 하고, 남편이 아내의 일정에 동행하기도 한다.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음악회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원칙을 세워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지인 A를 7년 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평소 가치관도 비슷하고 함께 연주했던 경험도 있던 터라 더욱 반가운 마음이 컸다. A는 7살짜리 아들을 둔 아빠이지만 연주 일정 때문에 정작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큰 고민이었다. 그의 1년 스케줄은 대략 이렇다. 주로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스페인 등의 유럽 극장에서 많은 시간 노래하고, 중간중간 호주나 일본, 그리고 뉴욕과 시카고 등의 미국 무대를 찾는다. 그래서 1년에 두 달 정도는 일부러 연주 스케줄을 잡지 않고 휴식을 갖는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무대에 서는 것이 아마도 많은 음악가들의 공통된 꿈일지도 모른다. 자녀를 예술가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바라는 목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접한 인터뷰에서 한 배우는 어머니와 갈등했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털어놓았다. 이 배우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는데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한 음대로 연수를 떠났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천재들의 재능을 두 눈으로 직접 경험한 후 자신의 현주소를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길은 여기까지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꿈을 위해 떠난 미국 연수가 오히려 인생을 돌이키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 한 셈이다.

음악가들은 종종 꿈과 현실에 큰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인생을 연주 여행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유명 연주자들의 삶은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열심히 활동한다고 해서 지금의 유명세가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최첨단 신인들은 기본적으로 유명 콩쿠르 입상 경력이 보증하는 우수한 기능을 탑재했다. 새로운 인물을 띄우는 것이 쉽지 않다지만, 화제성 측면에서는 '새로움'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조차도 최근까지 자신이 연주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이런 유명세를 계속 가지고 활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고충을 이야기했다.

A는 거의 모든 연주에 아내와 함께 여행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요즘도 방학만 되면 그가 노래하는 곳으로 식구들을 불러들인다. 음악가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삶의 건강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 연주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주와 연주 사이에 집으로 돌아가 반나절이라도 가족과 시간을 보낸 후 다음 여행지로 떠난다. 여행은 즐겁지만 동시에 고단하다. 오랜 기간 동안 가족을 떠나 연주하며 여행하는 것은 인생을 건 모험과도 같다. 삶의 건강을 지켜내는 음악가가 결국 롱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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