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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빗나간 자식 사랑

대형 마트의 주말은 유난히 붐볐다. 카트를 밀면서 서로 피해 다니기도 조심스러웠다. 마침 고기를 구워서 맛을 보게 하는 시식 코너가 있었다. 내가 맨 앞에서 한 점을 찍어서 맛을 보고 있을 때 한 초등학생이 옆에서 갑자기 나타나 고기를 주워 먹기 시작했다. 좀 무례했지만 두 점까지는 보고 있었으나 세 점을 연거푸 집어먹자 나는 아이에게 하나만 맛을 보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아이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계속 고기를 입에 넣었다. 아이가 7개쯤 쉴 새 없이 먹어대자 나의 입에서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놈아, 한 개씩만 먹는 것이라고 했잖아."

아이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흘깃거리면서 멀리 달아나버렸다. 혀를 차는 서비스 여성을 쳐다보며 나는 아이들이 저렇게 크면 나중에 도둑도 될 수 있겠다고 걱정하는 말을 중얼거리듯 남겼다.

아내와 내가 과일을 사기 위해 다음 코너로 이동하고 있을 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느닷없이 나에게 덤벼들었다. "당신이 뭐야. 당신이 고기 주인이야"라면서 대들었다. 심지어 내 가슴을 주먹으로 두 번씩이나 툭툭 치면서 "어린 아이에게 폭행을 하면 돼? 응~"이라며 거칠게 공격했다. 나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놀랬다가 곧 반사적으로 호통을 쳤다. "이게 무슨 행패야, 무슨 일인지 알고나 그래?" 그러나 그는 더 목소리를 높여가며 내 어깨를 끌어당기면서 구타할 태세였다. 나는 순간 핸드폰을 꺼내 급하게 다이얼 패드를 눌렀다. 거기는 소방서이니 112로 신고하란다. 나는 건너편의 구내 경비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 경찰을 부르라고 요구했다.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겁에 질린 안색으로 나에게 불평을 늘어놨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줘야 한다고 아내에게 쏘아붙였다.

경찰은 양측에게 입장을 묻는 초동 진술을 따로따로 받았다. 나는 상대의 무례와 폭력을 소상히 설명했고, 경찰은 내가 어린이를 겁박하고 "도둑놈"이라면서 폭언을 퍼부었다는 게 상대편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양측의 주장을 들은 뒤 경찰은 상대의 처벌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처벌을 원하면 정식수사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입건하면 재판까지 이어지고, 그자는 폭행죄로 구속이나 벌금, 그리고 그 기록이 평생 따라다닐 판이었다. 잠시 생각 끝에 나는 "굳이 처벌은 원치 않는다. 다만 폭력을 휘두른 행위와 무례한 언동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의 다짐이 전제다"라고 밝히고 말았다.



상대는 내가 아이에게 사과하면 자기도 고발을 취소할 수 있다고 나왔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과하라는 것이냐고 묻자, 겁을 주는 몸짓으로 아이를 주눅 들게 했으며, "너 도둑놈이 될 거야"라고 언어 폭행을 저질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CTV를 판독한 뒤 경찰의 중재에 따라 그는 나에게 분명히 사과하고, 나는 아이에게 상처를 씻어주는 위로를 해주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나는 선뜻 상대방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이도 응함으로써 다툼은 쉽게 막을 내렸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경찰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한테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대하면 난리를 친다면서, 그날도 그런 문제로 두 번이나 초등학교로 출동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날 나는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두 개의 흉측함을 보았다. 그 하나는 빗나간 자식사랑으로 나타난 편협된 이기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기주의에 거슬리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폭발하는 폭력이다. 이런 모양으로는 결코 건전하고 성숙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아내를 따라가는 나의 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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