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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9·11과 대선 관전 포인트

이종호/편집위원

그날 오전 나는 맨해튼의 한 고층 빌딩에 있었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하라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사람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정신없이 뛰쳐 나왔다.

거리엔 매캐한 냄새가 자욱했고 소방차와 구급차들이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불길과 연기에 휩싸인 110층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지척에 보였다.

지하철과 철도 버스는 모두 끊어졌다. 공중전화나 휴대폰도 작동되지 않았다. 일분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들은 뛰고 있었다. 나도 따라 뛰었다. 무역센터 위로는 계속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우두두두 굉음이 들렸다. 본능적으로 돌아섰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보였던 건물이 신기루처럼 내려앉았다. 대신 그 자리엔 버섯구름 같은 것이 피어 올랐다. 히로시마 원폭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먼지와 비명과 사이렌 소리들을 뒤로 하고 다시 내달렸다. 마침내 퀸즈보로브릿지에 이르렀다. 다리 위엔 수만명의 사람들이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피난 행렬이었다. 나도 그 무리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걸어 걸어 맨해튼을 빠져 나왔다. 꼭 7년 전 나의 오늘이었다.

2973명 사망. 9.11의 공식 희생자수다. 부상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미국 역사 이래 단일 장소에서 이렇게 큰 희생은 없었다. 그것도 본토에서 민간인이 피해를 당했다.

그 날 이후 미국은 달라졌다. 이민 정책이 바뀌고 대외정책도 수정됐다. 경제가 발목 잡히고 전쟁과 테러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평화와 공존이라는 말 대신 응징과 복수라는 말이 횡행했다. 급기야 아프간을 침공했고 이라크를 점령했다. 그 와중에 다시 4천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죽어갔다. 9.11 희생자보다 더 많은 숫자다.

오늘로써 만 7년이 되었다. 아무리 비극적인 사건도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된다. 상처 또한 어떤 모양으로든 아문다. 하지만 9.11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빈 라덴은 건재하며 테러 위협 또한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70층인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내려온 지인이 있었다. 그는 90층 100층에서 꽃잎처럼 흩날리며 떨어지는 몸뚱이들을 보았다고 했다. 천길 아래로 내리 꽂혔다가 럭비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던 파편들을 보았다고 했다.

그 날 이후 몇 일을 먹지 못했고 몇 달을 잔영에 시달렸으며 몇 년을 일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랴. 모든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이렇듯 9.11은 잠재의식을 짓누르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제 미국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엎치락뒤치락 후보들의 경쟁이 흥미롭다. 모두가 변화를 부르짖고 변혁을 외치며 희망을 얘기한다.

전문가들은 부진을 거듭하는 경제 문제가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피부색과 세대와 남녀 차이에 촉각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테러와 전쟁과 국가 안보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후보는 결코 백악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 점에서 9.11은 새 대통령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7년을 짓눌려 온 테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 세계 곳곳에서 실추된 국가 이미지를 되살리는 일 만신창이가 된 미국인의 자존심을 달래는 일들이 그것이다.

오바마일까 매케인일까. 누가 이 일을 더 잘 감당할 것인지 가늠해 보는 것도 이번 대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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