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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한국 가서 사장님 된 LA 목사님

[LA중앙일보] 발행 2019/01/2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1/24 18:06

청년 빈곤은 산업화 시대의 또 다른 그늘이다. 미국도 청년 취업난이나 대학생 노숙자 문제 등이 수시로 이슈가 되지만 한국은 좀 더 심각하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0%에 이르지만 대학에 못 가는 나머지 20%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퇴학이나 휴학 등으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초중고생도 30만~40만 명에 이른다. 대학을 마치고도 취업을 못해 빚더미에 앉은 청년들도 즐비하다. 이들 대부분은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으로 10대와 20대를 버텨낸다.

흙수저란 물려받은 것 없는 빈곤한 청년들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거기에 더해 '흙밥'이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아침을 거르거나 우유 한 잔이 고작인 젊은이들, 6000~7000원 식사 값이 부담스러워 컵라면에 단무지 하나로 때우기가 다반사인 흙수저 청년들의 식사를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6·25 전쟁 때도 아니고 국민소득 3만 달러나 되는 나라에서 '청년 흙밥'이 웬말일까.

정부나 사회가 조금만 눈 돌리면 대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사가 다르니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청년들의 밥에 대한 작지만 따뜻한 관심으로 '정말 싸고 푸짐한 한 끼'를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면 그것이 그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 그런 곳이 있다. 김치찌개 3000원. 공기밥 무한 리필을 슬로건으로 내건 '청년식당 문간'이란 식당이다. 2017년 성북구 정릉시장에 처음 문을 연 이 식당 사장님은 뜻밖에도 20년째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글라렛선교수도회 이문수 신부다. 고시원에서 굶어 죽은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목사가 우연히 이 기사를 보게 됐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LA 중형교회 담임이었던 최운형 목사(51)다. 나성영락교회에서 6년간 부목사로 일했고 2010년부터 세계선교교회에서 시무하던 그는 평소 목회 철학이 '현장 사역'이었던 만큼 '바로 저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한국의 신부님 사장을 찾아갔다.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밥상은 그 자체로 귀한 일이고, 착한 일은 하나 더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설득, 흔쾌히 지점(?) 개설 허락을 받아냈다. 창업 정신과 조리법, 운영 방식도 전수받았다. 다른 것은 독자적 운영이라는 것뿐이다.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부와 같은 사역을 하는 것만으로도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아닌가요. 아름답죠."

안정된 담임목사직을 스스로 내던지고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굽히지 않았다. 가슴 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해 10월 드디어 서울 연신내에 식당을 열었다. 사장님이 된 것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최 목사는 직접 주방에서 찌개도 내리고 홀 서빙도 한다. 월 150만원 가게 임대료에 파트타임 두 사람 인건비까지 감당하려면 하루 60~70명은 와야 하는데 아직은 30~50명 정도다. 당연히 적자다. 일단 부족한 부분은 전에 있던 교회의 후원금으로 메우고 있다. 가끔 쌀 포대를 보내주거나 반찬값을 후원해주는 독지가도 있다. "덕분에 점점 동네와 친해지고 있고, 찾아오는 분들께 따뜻한 밥과 찌개를 대접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하죠."

억 단위의 사치와 소비가 일상화된 한국이다. 그렇지만 단돈 만 원이 없어 밥을 굶어야 하는 청년들 또한 적지 않은 곳이 한국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3000원짜리 청년밥상에 담긴 사랑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요란한 말과 구호대신 직접 현장에 스며드는 '특별한 길'을 선택한 LA 출신 '목사 사장님'의 대박 성공을 성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연신내 '청년밥상 문간'은 지하철 연신내역 3번 출구 은평경찰서 방향 150m 건물 2층(불광2동 320-17)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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