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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김석하/사회부 부장

소주잔에도 '능선'이 있는 것을 아는가.

그 능선은 세대에 따라 술을 잔에 따르는 양을 말한다. 자그마한 그 잔 속에 세대 차이는 의외로 엄격하다.

50세가 훌쩍 넘는 세대는 소주 잔을 꽉꽉 채워야 한다. 하지만 30대 후반 이후 중년 세대는 8부 능선이다. 그 밑 세대나 젊은 세대는 절반이 조금 넘는 6부 능선이 일반적이다. 그 선을 넘거나 모자라면 눈총을 받는다.

왜 그럴까.



세대별로 차이가 나는 소주잔 능선은 '나를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술이 차고 남은 빈 공간은 바로 '나'다.

옛날 세대의 빈 공간 없는 꽉찬 술잔은 "이 술자리에서 나를 지키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동의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다 주겠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8부.6부 능선은 "이 정도(20% 40%)는 나를 지키는 공간으로 여지를 두고 싶다"는 뜻이다. 다 받지도 다 주지도 않겠다는 세태의 반영인 셈이다.

소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삽겹살. 삽겹살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면서 여전히 '국민 안주'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사람이면 남녀노소를 떠나 소주+삽겹살을 매개로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여기에 연탄불이 더해지면 가히 '국민 궁합'이다. 연탄불 위에 삽겹살이 지글거리고 소주잔이 오가는 풍경은 한국 정(情)의 원형이다.

실제로 연탄불에 고기를 구우면 맛이 더 좋다.

개스불은 탄화수소인 개스를 태우는 거라서 연소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함께 수증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고기 맛을 줄인다. 하지만 숯불이나 연탄불은 순수한 탄소라서 수증기가 안 생길 뿐만 아니라 떨어진 육즙이 타면서 훈증연기에 의해 고기 맛이 더 산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풍속화를 그린다면 '소주.삽겹살.연탄불'이 3대 요소다.

소주는 힘든 현실의 고뇌를 '값싸게' 잊게 만들었다. 삽겹살은 힘든 현실의 희망을 '값싸게' 보충해 줬다. 연탄불의 오렌지 빛은 차가운 경쟁사회를 '값싸게'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것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은 서민적이라는 이유다. '값싸다'는 것은 단순히 주머니 사정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마주앉은 사람과의 편안함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 풍속화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연탄불을 버려야 할 상황이 됐다. 연탄불이 자살도구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탤런트 안재환의 연탄불 자살 사건 이후 지난 일주일 사이 한국서 3건의 모방 자살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유행할 조짐마저 보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연탄불은 돌이켜보면 '따뜻한' 낭만이었다.

불과 20여 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한국국민들은 3.3kg 연탄을 하루에도 수 차례 들었다놨다하며 '연탄불 지키기'에 골몰했다. 주부에게는 일과였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자식들은 엄마를 위해 그 컴컴하고 힘든 일을 대신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바닥에 누우면 어렴풋이 가족 누군가의 희생이 느껴졌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노력의 상징같은 연탄불이 이렇게 자살의 도구로 전락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가난하지만 가족이 똘똘 뭉쳐 세상풍파를 헤쳐나가자는 가족애의 상징같은 연탄불은 이제 소주잔의 능선이 점점 낮아지는 '자기애 중심'의 세태앞에 불이 꺼지고 있다.

짧은 3행으로 수많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린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는 이렇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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