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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포럼] 이민단속국이 법원에 발 들이지 못하게 해야

"체류 신분이 불안정한데 법정에 가는 것이 괜찮을까요?"

외국 출생 인구가 450만 명이 넘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의뢰인들에게 자주 들은 질문이다. "괜찮습니다. 체류 신분에 상관 없이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거나 방어하기 위해 법원에 가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조언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더 이상 법원이 이민 단속으로부터 안전한 성역이라고 장담하기 힘들게 되었다.

서류미비자 법원 체포 늘어
가정폭력 피해여성도 잡혀




이 불길한 조짐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 초 텍사스 엘파소 카운티의 한 법원에서 처음 나타났다. 오랫동안 파트너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한 멕시코 출신 여성이 마침내 용기를 내어 접근금지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판사는 그녀의 요청대로 가해자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렸다. 이 판결을 얻어내는데 그녀가 서류미비자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미국의 여느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두한 이 여성은 이날 법정 안까지 들어온 이민세관단속국(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ICE) 요원들에게 체포가 되었다. 가해 남성이 그녀를 서류미비자라고 이민국에 신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법원에 갔다가 이민국에 체포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로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케이스가 텍사스 같이 반이민 정서가 강한 일부 지역의 예외적인 상이기를 바랬지만, 불행하게도 지난 2년 동안 비슷한 일들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뉴욕서도 2016년 이후 급증
총 겨누고 폭력·강제 체포 등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도시 뉴욕도 예외는 아니다. ICE 요원들이 공공연히 법정 안까지 들어와 이민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이전에도 이민 단속반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를 잡기 위해 법원 주변에 출몰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법원은 이민국의 단속이 미치지 않는 성역으로 여겨졌다. 그 금기가 트럼프 정권 하에서 깨졌다.

최근에 나온 한 보고서는 현재의 암울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법원에서 ICE가 벌이는 이민자 단속과 체포 상황을 추적해 온 인권단체 이민자방어프로젝트(IDP)가 지난 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주 법원 건물 안이나 근처에서 ICE 요원에게 체포된 이민자의 수가 2016년 이후 무려 1700% 증가했다.

보고서는 또한 체포 과정에서 ICE가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ICE 요원이 이민자에게 총을 겨누고 힘으로 제압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또한 사복 차림의 요원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이민자를 연행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예를 들면 브룩클린 법원에서 심리를 마치고 나오던 한 남성의 경우 그의 변호사가 보는 앞에서 사복 ICE 요원들에게 끌려갔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변호사를 무시하고 남성을 강제로 차에 태우는 것을 지켜본 행인들이 911에 납치신고를 하기도 했다.

변호사를 미행해 이민자를 체포한 경우도 있다. 의뢰인을 대신해 법원에 출석한 한 변호사는 심리 연기 요청을 한 후 의뢰인과 만나기로 한 법원 앞의 맥도널드 매장으로 향했다. ICE 요원들은 법정에서부터 그 변호사를 몰래 뒤쫓아 가서 결국 그의 의뢰인인 이민자를 체포했다.

중범죄를 저지른 형사사건의 피의자뿐 아니라 교통티켓 같은 경미한 사안에 연루된 사람들도 이민국의 표적이 되고 있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영주권자나 기타 합법 신분을 지닌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인신매매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 법의 보호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법원에 같이 동행한 가족과 친지도 ICE의 무차별적 체포 대상이 되면서 이민자 커뮤니티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최근에 만난 의뢰인 중에는 이전 소송 기록을 떼러 법원에 가는 것조차 두렵다고 토로한 사람도 있다.

나치독일 비밀경찰 연상시켜
변호사·검사·판사들도 항의


이처럼 트럼프 정부 하에서 ICE가 거의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 하면서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비유될 정도다. 트럼프 정부의 인종주의적인 이민자 공격에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ICE 철폐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무분별한 이민 단속에 항의해 변호사들도 법원 앞에서 수 차례 항의시위를 벌였다. 검사와 판사들도 이 항의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전직 판사 수십 명이 법원에서의 이민 단속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ICE에 보내기도 했다.

법원 직원이 ICE의 이민자 체포에 협조한 사례도 드러났다. ICE 요원이 이민자를 체포하는 것을 옆에서 돕거나 개인 정보를 제공해 체포를 용이하게 하고, 심지어 법원 직원이 직접 체포를 한 후 ICE에게 넘긴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법원에 오는 모든 이들이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법원이 도리어 이민자 체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트럼프 정부 이전에도 법원에 출두 했다가 이민국에 체포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국한되었다. 특히 범죄와 관련이 없는 가정법원이나 일반법원의 민사 소송에 출두하는 경우 체류신분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법원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법정의 추락·신고도 꺼려
민주주의 기본적 권리 침해


법원에서의 무차별적 이민 단속은 사람들에게 사법 정의가 공평하게 집행되지 않을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추방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는 이민자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이민자들이 범죄가 발생해도 경찰 신고를 꺼리고 법원에 가는 것을 피하게 되면 결국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공동체 전체의 안전에 위협이 될 것이다. 단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텍사스 엘파소의 경우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법정에서 이민국에 체포된 후 가정폭력 피해자가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하는 비율이 그 전에 비해 18% 감소했다고 한다.

범죄 혐의로 기소가 되었을 경우 누구나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방어할 권리가 있다. 형사 사건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법정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해야 할 일은 부지기수로 많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의 부당한 취급을 당했을 때, 집주인이 꼭 필요한 집수리나 난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때,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침해 되었을 때, 아이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 등 수많은 경우가 있다. 법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의 하나다.

ICE의 법원 이민 단속이 노리는 것은 이민자 추방뿐 아니라 이민자 커뮤니티 전체가 음지에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이등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침해이다. 따라서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전체 커뮤니티가 자기 일로 인식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영장 없는 법원 출입 금지
주의회 관련 법안 지지해야


드블라지오 시장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은 뉴욕을 '이민자 보호도시(Sanctuary City)'로 만들어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한 바 있다. 진정 이민자를 보호하는 도시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ICE가 법원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금 뉴욕주의회에는 ICE가 정식 영장 없이 법원에 들어가 이민자들을 체포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Protect Our Courts Act)이 발의되어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아래로부터 압력을 가해야 한다. 법원이 이민자를 단속하는 미끼와 덫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수경 / 공익·인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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