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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봄을 만드는 사람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LA중앙일보] 발행 2019/02/11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9/02/10 12:30

우리 조상들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되면 꽃봉오리 81개가 달린 매화나무를 그려 창문에 붙여놓고 하루 한 송이씩을 붉게 칠했다. 9일마다 추위가 누그러지기를 아홉 차례, 곧 81일간의 기다림이 끝나고 창문에 붙은 하얀 매화 송이 모두가 붉은 매화 송이로 변할 때쯤, 창문을 열면 창밖에는 어김없이 진짜 매화가 붉게 피어올라 있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고 부르며 겨울의 무료함을 달랬다.

동짓날부터 그리기 시작한 하얀 매화 송이가 온통 붉게 되려면 3월 10일경이나 되야 한다. 절기로는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놀라 깬다는 경칩(驚蟄)과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 중간쯤이다. 이때가 되면 산천초목의 푸르름이 봄을 알리고,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도 기지개를 켜며 봄의 기운으로 충만해진다. 그런데 정작 우리 조상들은 붉은 매화 송이가 채 절반도 물들기 전인 2월 초에 '봄이 들어선다'는 뜻을 담아 '입춘(立春)'이라는 절기를 두었다.

2월 초면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다. 올겨울 유난히도 매서웠던 중부나 동부의 추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대지를 적시는 비와 함께 찬 바람만 슬쩍 불어도 한겨울을 지나는 느낌이다. 그 스산함을 날씨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새해 다짐은 어쩌고 또 한 달을 속절없이 보내며 세상에 치여, 사람에 치여 굳게 얼어붙은 마음의 문은 열릴 생각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아직도 추위가 한창인 2월 초를 '입춘'이라고 정하고 먼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봄을 맞는 연습을 했던 것처럼, 우리도 봄이 오기 전에 마음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봄은 피어나는 계절이다. 봄은 신비가 충만한 계절이다. 봄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스프링(Spring)'에는 봄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샘'이라는 뜻도 있고, '솟아오른다'는 뜻도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날씨만 따뜻해지는 때가 아니라 '솟아나는 샘'과 같이 생명이 살아나고, 기운을 북돋는 계절이다. 입춘을 맞아 한 해의 소망을 담아 대문이나 집 기둥에 붙이는 글을 춘첩자(春帖子)라고 한다. 조상들은 '입춘대길(立春大吉-봄이 들어섰으니 크게 길한 일이 집안에 가득하라)' '건양다경(建陽多慶-양의 기운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때이니 좋은 일이 집안에 가득하라)'라고 쓰인 춘첩자를 걸어두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세상의 봄은 저절로 오지만 삶의 봄은 만들어야 온다는 말이 있다. 매해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은 한 번도 그 시간을 어긴 적도, 오겠다는 약속을 깨트린 적도 없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계절의 봄은 일 년에 한 번뿐이지만, 삶의 봄은 만들기만 하면 언제든 우리 곁을 찾아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봄의 향연을 즐기게 한다. 신학자 김흥호는 "자연은 봄이 와야 꽃을 피우지만, 인생은 꽃을 피워야 봄이 온다"고 했다. 계절의 봄이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인생을 아름답고 소중히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 계절의 봄이 오기 전에 인생의 봄부터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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