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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 열풍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2/11 07:05

넷플릭스 리얼리티쇼 전세계 화제
인기 타고 재활용품 기부 확산
정신수양, 일본식 미니멀리즘 강조
정리 강박관념을 사업으로 키워



넷플릭스 리얼리티 쇼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에서 곤도 마리에(왼쪽)가 미국 가정을 방문해 정리를 돕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두 손으로 물건을 만져보세요. 아직도 설렘을 주나요? 설렘이 없으면 버리세요.”

정리·정돈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일본인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35)가 새해부터 세계에 정리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곤도는 2011년 펴낸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으로 일본·한국 등에서 이름을 알린 정리 전문가이다.

올해 들어 그의 집 정리 노하우가 새삼 퍼져 나가게 된 계기는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방영하는 리얼리티 쇼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때문이다. 지난 1월 1일부터 총 8개의 에피소드가 방영된 이 시리즈는 곤도가 미국 일반 가정집을 방문해 특유의 비법으로 정리를 도와주는 내용이다.




곤도 마리에





특히 미국 반응이 뜨겁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며 물건 더미 속에서 허우적대는 미국인의 삶을 바꿔 놓을 기세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설렘(spark joy)을 기준으로 물건을 버리거나 간직하기를 선택하는 곤도의 독특한 정리법이 물건에 파묻혀 사는 미국 가정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미국 전역의 재활용 가게에 물건을 기부하는 행렬로 이어졌다. 굿윌·구세군 등 안 쓰는 물건을 기부받아 판매하는 매장이나 중고품을 사고파는 빈티지 숍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는 ‘곤마리’ 정리법으로 가지런히 정돈한 옷장·수납장 사진 올리기가 유행이다.

곤마리 정리법은 집안 물건을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①의류 ②책 ③서류 ④소품(부엌·화장실 용품) ⑤추억의 물건(사진·기념품)이다. 범주 순서대로 해당 물건을 모두 꺼내어 한곳에 모은 뒤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너무 많지 않은지 평가한다. 첫 순서로 옷을 정리하는데, 천정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옷 산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구나’라고 자각한다. 반성과 자각이 반복되면서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버릴 수 있게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그의 정리법에 따라 정리한 옷장과 양말.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평가 기준은 물건을 하나씩 꼭 안아보고 만져봤을 때 설레는지 아닌지다. 더 이상 설렘을 주지 않는 물건은 진심 어린 감사 표시와 함께 작별을 고한다. 낡은 양말이나 안 입는 원피스를 끌어안고 “고맙다”고 말한다. 다소 주술적이고 종교의식처럼 느껴지는 이 부분이 미국 시청자들이 곤마리 정리법에 열광하는 이유다. 일본풍 미니멀리즘을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곤도는 일본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통역을 통해 대화한다. 고객 집을 처음 방문하면 거실 한가운데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바닥을 쓰다듬으며 집과 ‘인사’를 나눈다. 물건에도 생명이 있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킹 가운데를 꽉 묶어 보관하면 스타킹이 숨을 못 쉰다고 믿는다.

그의 지시에 따라 정리하다 보면 고객들은 ‘인생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믿게 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실제로 육아를 시작한 뒤 집이 엉망이 돼 다툼이 잦아진 부부가 몇주 동안 집을 싹 정리한 뒤 화목해진 에피소드가 나온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짐을 정리하는 아내, 집 전체가 창고나 다름없는 ‘빈 둥지’ 노부부, 게이·레즈비언 커플 등이 무질서한 집을 정리하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스즈키 사토코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정리정돈이 청소 그 자체를 말한다면, 미국에서는 자아실현 방법론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곤도의 정리법은 그냥 정리법이 아니라 자신을 돕고, 이해하고, 개발하는 도구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정리법에 따라 정리한 옷장과 양말.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곤도는 어릴 때부터 꼼꼼히 물건을 정리하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한다. 19세 때부터 친구들 물건을 정리해주고 용돈을 벌었다. 도쿄여자대학(사회학)을 졸업한 뒤 인력 회사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정리하는 일을 계속했다. 초기에는 다섯 시간 동안 정리하고 10만원가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전업으로 삼았다.

미국에서의 성공은 쉽지 않았다. 2014년 책이 영어로 번역·출판됐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곤도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을 홍보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방송이나 토크쇼에 출연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기회는 운명적으로 왔다. NYT 기자가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곤마리 정리법에 따라 옷장 정리를 시도한 경험을 기사로 썼다. 이후 책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등 저서가 800만 부 넘게 팔렸다.

곤도는 ‘곤마리 미디어’ 창업자 겸 최고비전책임자이다. 집필과 방송 출연 외에 곤마리 정리법을 수료한 컨설턴트 양성으로 수익을 낸다. 곤마리 인증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교육비는 1인당 약 2700달러(약 303만원)이다. 스즈키 교수는 “곤도는 집 정리라는 평범한 일을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곤도의 정리법이 ‘소비주의적 미니멀리즘’이란 비판도 있다. 버리는 만큼 새 물건을 들여놓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의식 있는 소비를 유도한다는 긍정론도 있다. 아직 곤마리 정리법이 유통·소매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불명확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결국 적게 소비하는 게 미덕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물질적인 소비, 물건 구매를 통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잘못된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곤도가 전하는 메시지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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