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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술 모히또, 헤밍웨이가 즐긴 바로 그 칵테일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2/11 08:02

나의 쿠바 여행기② 헤밍웨이 따라하기



모히또의 고장은 몰디브가 아니다. 쿠바다. 엄청난 양의 사탕수수와 엄청난 양의 럼이 만들어낸 칵테일이다. 헤밍웨이가 특히 모히또를 좋아했다.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테마여행 1탄 ‘쿠바 속으로’가 성공리에 마무리됐습니다. 중앙일보 독자 15명이 함께한 쿠바 여행기를 테마에 따라 소개합니다. 두 번째 순서로 쿠바의 헤밍웨이 흔적을 되밟습니다.

점심엔 모히또, 저녁엔 다이끼리



올드 아바나에 있는 엘 플로리디따의 다이끼리. 온종일 어마어마한 숫자의 관광객이 이 칵테일을 마시러 찾아온다. 헤밍웨이가 즐겼다는 바로 그 다이끼리다. 맛은 모히또보다 못했다. 손민호 기자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내 모히또는 라 보데기따, 내 다이끼리는 엘 플로리디따).”
이 문장은 일종의 테제다. 헤밍웨이가 전 세계 관광객에게 내린.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남긴 문장 가운데 관광객이 달달 외우는 하나의 구절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 구도심 ‘올드 아바나’에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술집 두 곳이 있다. 라 보데기따와 엘 플로리디따. 두 집 모두 온종일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른 술집보다 비싼 편이어도, 인파를 뚫고 들어가 모히또와 다이끼리를 주문한다. 모히또는 럼에 설탕과 민트를 넣은 칵테일이고, 다이끼리는 슬러시처럼 생긴 럼 칵테일이다. 헤밍웨이가 당뇨와 고혈압을 앓았던 탓인지 두 집의 칵테일 모두 다른 집보다 독한 편이다. 쿠바에서 보낸 열흘, 평생의 모히또와 다이끼리를 다 마신 듯하다.



아바나 시내에 있는 또 하나의 헤밍웨이 명소 '라 보데기따'의 모히또. 이 집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맛이 다른 집의 모히또보다 강하다. 손민호 기자








라 보데기따 내부 모습.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온 벽에 낙서를 해놨다. 2층도 꽉꽉 차 있었다. 손민호 기자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단언컨대 미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작가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았고, 책도 엄청나게 팔렸다. 영미 문학사는 헤밍웨이를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로 분류한다. 1900년 전후에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환멸을 느낀 세대를 이르는 문학 용어다. 하나 ‘로스트 제너레이션’ 타령은 문학 전공자의 일이다. 쿠바 관광객에게는 모히또 체험이 당면한 과제다.



올드 아바나 맘보스 문도스 호텔의 헤밍웨이 객실. 객실 구석에 싱글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있고, 창문을 향해 낡은 타자기가 있다. 이 방에서 헤밍웨이는 책 3권을 집필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맘보스 문도스 호텔 옥상 레스토랑에서 내다본 올드 아바나 풍경. 거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헤밍웨이는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이 거리의 풍경을 좋아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쿠바 곳곳에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를테면 올드 아바나 거리의 ‘맘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 1932년부터 1939년까지 헤밍웨이가 사용했다는 객실이다. 대작가의 방치고 소박했다. 단출한 싱글 침대와 늙은 타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반면에 아바나 외곽의 농장 저택은 호사스러웠다. 헤밍웨이는 1939년 저택 ‘핀카 비히아(Finca Vigia)’를 샀다. 전망대가 있는 농장이란 뜻이다. 1961년 쿠바를 떠날 때까지 그는 여기에서 살았다. 건물 면적만 4000㎡(약 1200평)이라고 했다. 미국 여배우가 알몸으로 물놀이했다는 수영장에서는 차라리 실망했다. 『노인과 바다』가 태어난 성지라기엔 너무 호화로웠다.

쿠바가 미국의 신식민지였던 시절, 헤밍웨이는 쿠바에 별장을 뒀던 여느 미국인 부르주아처럼 귀족 생활을 영유했다. 미국 본토에서 금주법이 시행됐을 때는 쿠바에서 양껏 술을 마셨다. 알코올에 중독된 미국인 소설가에게 쿠바는 천국이었을 터이다.

입양 쿠바인



헤밍웨이 단골집 엘 플로리디따에 있는 헤밍웨이 동상. 실물 크기라고 한다. 엘 플로리디따에 들른 전 세계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다이끼리 한 잔 들고 긴 줄을 선다. 손민호 기자





헤밍웨이는 평생 2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물론 쿠바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1928년부터 드나들었고, 1961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쿠바에 거처를 마련했어도 무시로 외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헤밍웨이에게 쿠바가 각별했던 것은 분명하다.

핀카 비히아에서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 상을 받는 최초의 입양 쿠바인입니다.” 노벨상 메달도 산티아고 데 쿠바의 꼬브레 성당에 기증했다. 헤밍웨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에 이 성당이 2번 등장한다. 그 중 한 구절을 옮긴다.

“저에게는 신앙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고기를 잡게 해주신다면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열 번씩이라도 외겠습니다. 만약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코브레의 성모 마리아님을 참배하기로 약속드리죠. 정말로 약속합니다(『노인과 바다』 66쪽, 김욱동 역, 민음사).”



헤밍웨이의 농장 저택 핀카 비히아. 이 호화 저택에서 헤밍웨이는 귀족처럼 살았다. 손민호 기자








핀카 비히아 내부 모습. 들어갈 수는 없고, 문을 열어놓은 입구에서 사진을 찍게 해준다. 아프리카 사냥에서 잡아온 동물들의 박제가 벽에 걸려 있다. 손민호 기자





작가 헤밍웨이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스페인 내전과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취재한 종군기자로서 반전운동에도 앞장섰다. 반면에 인간 헤밍웨이는 영락없는 마초였다. 4명의 아내 말고 애인도 여럿 있었다. 권투와 투우, 사냥과 낚시를 좋아했다. 페미니즘 평론가들은 헤밍웨이가 빚은 여성 캐릭터들의 수동적이고 부수적인, 때로는 부정적인 역할을 지적한다.

헤밍웨이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였다. 미국으로부터 가장 호된 시련을 받은 쿠바가 가장 미국적인 작가의 추억을 팔아 연명하고 있다. 아이러니일까.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태 뒤인 1961년 1월 미국은 쿠바와 국교를 단절한다. 국교 단절 직후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난다. 그리고 약 6개월 뒤 미국 북서부 아이다호주의 자택에서 엽총으로 자살한다. 62년 인생 중에서 33년을 헤밍웨이는 쿠바와 연을 맺었다.

노인의 바다



꼬히마르 해변. 노벨문학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의 실재 배경이 된 장소다. 한갓진 갯마을 풍경이 왠지 정겨웠다. 손민호 기자





전 세계의 문학청년과 문학소녀가 헤밍웨이를 추억하며 쿠바를 찾는다. 그러나 쿠바에 남은 헤밍웨이의 흔적은 대체로 문학적이지 못했다. 한 곳만은 예외였다. 한갓진 포구마을 꼬히마르(Cojimar)는 한갓져 문학적이었다. 『노인과 바다』의 실재 현장이다.

『노인과 바다』는 꼬히마르의 늙은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의 일화를 모티브로 한다. 핀카 비히아에서 꼬히마르는 약 15㎞ 떨어져 있다. 헤밍웨이는 자주 꼬히마르에 가서 바다 낚시를 즐겼다. 거기에서 그는 늙은 어부의 무용담을 들었다. 헤밍웨이의 낚싯배 이름이 ‘필라 호’다. 핀카 비히아 수영장 옆에 그 배가 전시돼 있다. 늙은 어부는 필라 호의 선장이었다. 헤밍웨이는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그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꼬히마르의 카페 라 테라짜. 『노인과 바다』에 등장한 동네 카페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달래고 바다로 나간다. 아바나 시내의 헤밍웨이 명소들처럼 관광객이 긴 줄을 선다. 손민호 기자








『노인과 바다』의 모델이 된 꼬히마르의 늙은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 그는 헤밍웨이의 낚싯배 '필라 호'의 선장이기도 했다. 손민호 기자





소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동네 카페의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달래고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엿새 뒤 거대한 청새치 뼈와 함께 돌아온다. 소설 속 동네 카페 ‘테라스’가 현실의 포구마을에도 있다. ‘라 테라싸(La Terraza)’란 간판을 걸고 관광객을 맞는다. 아바나 시내에 있는 헤밍웨이의 단골집처럼 갯마을 카페도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커피 대신 다이끼리만 마셨다.

소설에서 산티아고의 집은 언덕 위에 있다. 바다에서 돌아온 산티아고가 돛대를 걸머메고 겨우겨우 언덕을 오르는 장면은 그래서 십자기를 짊어진 예수를 연상하게끔 한다. 실재 인물 푸엔테스의 집은 마을 안에, 평지의 다른 집과 나란히 있었다. 너무 평범해 되레 낯설었다. 여태 헤밍웨이의 상상력을 너무 얕잡았었다.



코히마르 해변의 녹슨 방파제. 너무 낡아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방파제에서 맨몸으로 바다와 싸운 늙은 어부가 연상됐다. 추레하고 남루해서 좋았다. 손민호 기자





당장에라도 무너져내릴 듯한 방파제에 올라섰다. 그리고 한참 바다를 바라봤다. 잔뜩 내려온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 포구에서 쿠바인 수천 명이 미국으로 도망친 현실을 아는데도, 멀리서 늙은 어부의 작은 배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이렇게 이해했었다. 제 늙은 몸에 채 적응하지 못한, 아직도 사자 꿈을 꾸는 남자가 세상과 맨몸으로 부딪히는 이야기. 낡고 늙어 정겨운 쿠바의 포구에서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쿠바=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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