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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는 벨기에 '겐트'로 간다

백종춘 객원기자
백종춘 객원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19/02/15 미주판 29면 기사입력 2019/02/14 18:10

상인 조합, 대성당, 백작의 성 등
중세 도시의 원형 고스란히 간직

수도 브뤼셀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도시 겐트는 중세 도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오버 투어리즘'을 피해 한적하고도 여유로운 일정을 즐길 수 있다. 사진은 성 바프 대성당에서 바라본 시가지의 모습, 종루와 그 뒤쪽으로 성 니콜라스교회의 전면이 보인다.

수도 브뤼셀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도시 겐트는 중세 도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오버 투어리즘'을 피해 한적하고도 여유로운 일정을 즐길 수 있다. 사진은 성 바프 대성당에서 바라본 시가지의 모습, 종루와 그 뒤쪽으로 성 니콜라스교회의 전면이 보인다.

플랑드르 백작들의 거처였던 백작의 성.

플랑드르 백작들의 거처였던 백작의 성.

베네룩스 3국 중 하나인 벨기에는 '공용어'가 네덜란드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다. 나라 이름도 벨히어ㆍ벨지크ㆍ벨기엔으로 각각 불리니, 이방인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당연히 도시마다 이름이 서너 개다. 이를테면 벨기에 항구도시 앤트워프(영어식 이름)의 프랑스어 이름은 앙베르, 네덜란드어 이름은 안트베르펜이다.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1831년 독립하기 전까지 스페인·오스트리아·프랑스·네덜란드가 차례로 이 땅의 주인을 자처했다. 강대국이 벨기에를 노렸던 이유는 이 나라가 유럽의 무역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1/3 크기지만, 유럽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벨기에를 찾는 이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 수도인 브뤼셀이다. 하지만 이름난 여행지는 어디나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곳에서 북해 쪽으로 30분만 달리면 가 닿는 도시 겐트(Ghent)는 여유롭고 한적하기까지하다. 게다가 중세도시의 원형을 지니고 있어서 인접한 도시 브뤼헤와 더불어 요즘 뜨는 관광지의 반열에 올라 있다.

13세기에는 인구 6만 명이 거주하는 유럽에서 파리의 뒤를 잇는 부유한 도시였다. 언뜻 보기에도 겐트는 최적의 상업도시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겐트에는 두 개의 강이 흐르는데, 리스(Lys)강은 도심을 빙 두르는 지천이다. 리스강이 이어지는 스켈더(Schelde)강은 프랑스 북부에서 발원해 벨기에·네덜란드를 지나 북해로 흘러든다. 물줄기가 거미줄처럼 온 도심을 연결하는 덕분에 작은 배로도 도심 구석구석까지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유리했을 것이다. 실제로 겐트는 교통 이점을 바탕으로 모직물 유통 거점으로 발달했다.

반 에이크의 제단화로도 유명한 성 바프 대성당.

반 에이크의 제단화로도 유명한 성 바프 대성당.

중세 상인들이 교통로 역할을 했던 리스강은 여행자들이 겐트를 깊숙히 들여다볼 수 있는 물길이 되고 있다. 강 양안으로 아기자기한 도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강변의 건물은 중세 상인들의 조합(길드)이 세운 것이 대다수다. 석공조합, 선원조합 등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길드 건물 외양에 공을 들였다. 덕분에 겐트 구도심 강변은 개성 있는 옛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갖게 됐다. 겐트에서 꼭 해봐야 할 것이 바로 이 보트 투어다. 50분에서 2시간까지 코스가 다양하다. 한때 겐트는 공장 연기 자욱한 산업도시였다. 방직산업이 쇠락한 1990년대 이후 오수가 흐르던 리스강 수질 개선 작업과 함께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근처에 가기도 싫어할 정도로 더러웠던 리스강은 현재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겐트 최고의 여행 루트로 변모했다.

겐트의 주요 볼거리는 모두 구시가지에 밀집돼 있다. 중세의 핵심 건물인 성 니콜라스 교회(Saint Nicholas Church), 종루(Belfry of Ghent), 성 바프 대성당(Saint Bavo Cathedral)이 줄지어 있는 광장이 여행의 출발지 역할을 한다.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두 차례의 화재로 인해 13세기에 재건된 성 니콜라스 교회는 그 엄청난 규모와 정교함으로 인해 교회라기보다는 대성당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마구간으로도 사용됐던 이 교회는 프랑스 출신 오르간 제작자인 아리스티드 카바예 콜이 설계한 오르간과 더불어 19세기 중반 장 밥티스트 카프로니에가 제작한 두 개의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가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의 인습파괴자들이 성상을 파괴하면서 큰 손상을 입기도 했는데, 19세기의 대규모 복원 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청회색 석재로 마감된 화려한 전면부의 모습을 한눈에 보려면 바로 옆의 또 다른 명소 겐트 종루로 가야 한다. 1313년부터 67년에 걸쳐 지어진 이 종루는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리고, 나아가 망루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의 전망대로 그 역할을 달리하고 있다. 높이 300피트에 달하는 종루는 계단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있어 꼭대기까지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 앞쪽으로 성 바프 대성당과 뒤쪽으로는 성 니콜라스 교회의 전면을 비롯해서 중세 도시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정은 겐트의 상징처럼 우뚝 솟은 성 바프 대성당으로 이어진다. 12세기에 시작해서 16세기에 완공된 겐트 최초의 교구 교회인 대성당은 바로크ㆍ고딕 양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부에는 반 에이크 형제의 제단화가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경첩이 달린 12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이 제단화는 플랑드르 회화의 불후의 명작이자 15세기 유럽 미술의 초석으로까지 칭송받는다.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는 형인 위베르가 사망하자 동생인 얀이 위임받아 8년 만인 1432년에 완성한다.

웅장하고도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전경으로 방문자들의 시선을 끄는 곳이 바로 플랑드르 백작의 성(Gravensteen)이다. 1180년부터 1353년 플랑드르 백작 가문의 거처로 쓰였다가 이후 재판소, 감옥, 조폐청 심지어는 면사 공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1893년부터 1903년까지 복원작업을 거쳐 지금은 박물관이자 겐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해자처럼 강이 둘러싼 전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겐트 여행의 마무리는 리스강의 야경이 아닐까. 강물에 투영되는 중세 도시의 야경은 보석이나 다름 없다.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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