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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통 크고 영특한 아주머니

민병국 / 일사회
민병국 / 일사회 

[LA중앙일보] 발행 2019/02/15 미주판 27면 기사입력 2019/02/14 19:20

강 여사는 6.25전쟁 때 8남매를 이끌고 부산을 경유, 제주도까지 내려와 피난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3년 뒤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있는 본가로 귀환해 다시 평화로운 삶을 영위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집은 폭격 하나 받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남한을 점령한 북한 괴뢰군들도 눈썰미가 있었는지, 2층 집인 이곳을 자기들의 본부로 이용했던 것이다. 왼쪽으로는 경무대(현 청와대)가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국회의장 공관(현 국무총리 공관)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팔판동은 조선시대 8명의 판서가 살았다는 곳이고, 바로 옆은 삼청동이다. 지금은 북촌이라고 불리며 한옥이 많고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요즘은 색다른 카페나 음식점 등이 많아 젊은이들의 각광을 받는 곳이 되었다.

강 여사의 부군께서는 건축가로서 피난시절 제주의 OO공고에서 교감으로 재직한 바 있었다. 그런 연유인지 1957년 가을쯤 강 여사의 안방에는 OO공고 축구팀이 운동복 차림으로 십여 명이 며칠 동안 합숙을 한 적이 있다. 전국체육대회 참가차 상경한 것이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운동장 부근의 여관에 투숙하는 것이 상식인데 가정집의 안방을 점령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 당시 지방학교의 재정이 넉넉지 않은 사정을 감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바깥 어른의 생각이고 지시가 있었다 해도 강 여사의 동의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다른 얘기 또 한가지.

강 여사의 네 자녀들이 서울 재동에 있는 J국민학교에 다녔는데 그 당시도 치맛바람이라고 해서 몇몇 엄마들은 매일같이 출근해 교실 옆 복도에 진을 치고 담임선생님에게 눈도장을 찍고 하던 모습들이 있었다. 그러나 네 자녀의 엄마는 한번도 학교에 나타난 적이 없어, 자녀들은 괜히 불안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연말이 되면 교장, 교감, 그리고 4명의 담임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 만찬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자녀들은 얼굴에 웃음과 화색이 돌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강 여사는 40이 넘은 중년 나이에 종로에 있는 EMI 영어학원에 등록할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했었는데,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영어단어를 물으면 척척 대답을 해줄 정도였다고 한다. "엄마, 학생이 영어로 뭐야?" 물으면 "Student란다. 그리고 Pupil이란 것도 있으니 두 가지 다 알고 있으면 좋겠지"하고 답했다.

어머니, 큰 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어머니는 1914년 1월14일 생으로 2013년 1월11일 100세를 사흘 앞두고 우리들과 작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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