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열린 광장] 어디가 '우리나라' 일까?

필자의 처는 백인들을 가리켜 '미국 사람들은…'이라 부르곤 한다. 미국 시민권자인데도 그렇다. 한인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한국인'이라 부른다. 필자 교회의 목사님은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라고도 말씀하신다. 물론 한국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은…" 따위 표현은 미국에 사는 한인들 사이에 참 흔한 것 같다. 멕시칸, 흑인, 아르메니안 따위 분류도 '우리' 사이에 쉽게 통용된다.

가만 보면 '우리'라는 표현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심성이 담겨있다. 고려 시대 혈족 갈등, 조선 시대 당파 싸움, 구한말의 나라 잃은 슬픔에서 분단 이후 개발도상국의 배고픔까지, 절묘하게도 닮은꼴이 반복된 역사의 질곡을 거쳐 반질반질 닦아 굳어진 생존을 위한 집단주의의 다른 말이다.

그러나 우리―필자와 독자―는 한국에 사는 한인과는 또 다르다. 우린 미국의 삶에도 친숙하다. '휘발유' 대신 '개스'를 넣고 '고속도로' 대신 '프리웨이'를 탄다. 음식을 먹으면 응당 팁을 계산하고 변호사가 조금은 더 친숙하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가 1면에 실렸다.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미국 시민으로 살던 한인 1.5세 청년이 한국에 모처럼 방문했다가 병역의무를 회피했다는 이유로 출국 공항에서 붙잡혀갔다는 얘기다. 답답한 일이겠다. 양국 국적을 모두 소지했다지만 그 청년이 8년이나 군인으로 근무하기도 했다던 미국이야말로 그에겐 '우리나라' 아니겠나. 미국에 사는 우리에겐 이런 한국 법규가 근시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또 미국인이기도 하다. 국적이 어디든 우리는 미국식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미국 사회와 살아 소통하는 성원이다. 한편 한국의 입장에선 괘씸한 일일 것이다. 그곳에서 병역이란 첨예한 논쟁거리 아닌가.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온갖 인종이 섞였다. 학교는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다양성의 인정은 미국식 자유주의의 기본이 되는 가치다. 한편 학생 가운데에는 미국 사회를 세계의 축소판으로 보는 이도 있다.

'안 가봐도 뻔한 세상'식의 태도를 엿볼 때마다 나는 불편하다. '과거는 끝, 무한한 가능성만 열렸다!' 세상을 내 손바닥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미국식 순수함이 얼마나 어린 생각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인문학자들이 자각해 온 바다. 미국 제일주의, 미국 보수주의는 여기서 나온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그렇게 미국식 태도의 양 날개를 이룬다.

'우리나라' 따위는 없다고 내팽개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실상 국가는 이제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 이민자는 그걸 모두 잘 안다. 국적이 어디든 우리는 비슷한 운명의 굴레에 엮여 있다. 당신의 여권이 녹색이든 적색이든 사람들은 그보단 당신의 눈을 본다. 한국인이면서 미국인 됨을 스스로 탐사해 보자. 미국인으로서 한국식 '우리'가 얼마나 편협한지도 자각하자. 반대로 한국인으로서 미국식 자유주의의 순진함과 보수주의의 오만함에도 혀를 차며 걱정할 줄 아는 눈을 갖자.


오영훈 / UC리버사이드 강사·인류학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