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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30년 미국 생활을 돌아보니

박영혜 / 리버사이드
박영혜 / 리버사이드 

[LA중앙일보] 발행 2019/02/22 미주판 27면 기사입력 2019/02/21 18:56

2월은 우리 가족이 시카고로 이민 온 지 30년이 되는 달이다. 지나고 보니 빨리 지났고, 힘들었던 때도 눈물 흘린 때도 있었지만 감사함이 많다.

미시간 호숫가에는 높은 건물들이 있다. 호수는 바다처럼 넓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올림픽 끝날 즈음, 남편 초청의 미국행은 순조로웠다. 비자 받고 3개월 안에 떠나야 할 때는 아이들 학기말이었다.

시카고의 2월은 춥다. 그때 7살짜리 둘째는 오헤어 공항에서 숙소로 가며 창밖을 내다보다 "엄마, 미국이 왜 이렇게 더러워?"하고 물었다. 날아다니던 쓰레기들이 길가 눈 위에 얼어붙어 있어 내가 보아도 지저분했다. 목요일 저녁 도착한 우리는 두 분만 사는 목사님 댁 거실에 다섯 식구가 짐을 풀었다. 토요일에 6살 막내의 영주권이 우편으로 왔다. 한 주가 돼 가족 모두가 영주권을 받았다. 살아 보니 영주권을 받는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한때는 나만 빼고 남편까지 모두 학생이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답게 학교는 제도적으로 적응하기 편하게 되어있었다. 아이들도 학습능력에 따라 편성된 교실에 가 공부를 하고,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교과진도를 나갔다. 수시로 담임선생님을 부담없이 만날 수 있어 협조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둘째의 학교에 한 번도 갈 수가 없었다. 운동회날 점심을 가지고 가 만난 오십대의 담임 선생님의 말씀, "제일 작고 조용해 누군지도 몰랐어요, 시험을 잘 봐서 알았어요." 창가 밑 첫 줄 귀퉁이에 앉았던 둘째에 미안했었다. 나도 늦둥이에 시골 할머니같던 엄마 밑에 자라 학교에서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난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한 적이 없다. 사람은 때로는 보고 배운다는데 상처주는 선생님이 싫었다.

이민 오지 않았더라면 한국에서 세 아이를 사교육 없이 대학에 보낼 수 있었을까? 학비는?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생각한다. 세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파트타임 일을 해 돈을 벌어봤다. 대학에서는 일과 인턴십을 계속 했다. 자립심과 사회성에 도움이 되었다. 학교 교육 과정대로 성실하게 따라가니 사교육 없이 원하던 대학에 갔다. 큰 사회 지도자는 아니나 자신들 원하는 직업들을 가졌다.

인종차별에 대한 말들도 한다. 난 미국에 와 많은 일을 하지 않았지만 바닥 일을 할 때도 인종차별 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 아이들 말로는 보이지 않는 백인과의 차별이 있을지는 모르나 능력이 없으면, 직장에서 차별받는다고 한다.

내 고국에서는 얼마나 차별이 많기에 '갑질' 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싶다. 능력보다는 겉을 중요시하기에 명품을 찾고, 성형수술을 한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지만, 벗은 거지는 굶는다"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바른 가치관으로 속의 것을 채워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넓은 땅 기회의 나라에 이민와 사는 우리 후손들은 바른 가치관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이 땅의 국민으로 여러 민족과 더불어 살며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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