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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반미'가 사라졌다고?

"요즘 이상하리만치 한국사회에서 과격한 반미(反美) 구호가 사라졌다." 최근 만난 국제정치 학자가 던진 한마디에 일순간 귀를 쫑긋 세웠다. 광화문 주변에서 거의 일상화된 반미 시위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눈에 띄게 뜸해졌다는 진단은 주목할 만하다.

반미 세력이 침묵 모드로 들어간 최근 상황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반의 분위기와 비교해도 아주 다르다.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하자 한국사회의 반미 운동은 물을 만난 고기 같았다.

특히 2017년 4월 26일 주한 미군이 경북 성주에 사드를 전격 배치하자 '사드 한국 배치 저지 전국행동' 소속 시위대 3000여 명은 그해 6월 24일 "사드 가고 평화 오라"를 외치면서 19분 동안 주한 미국 대사관 건물을 인간 띠로 포위했다. 전례 없는 포위 시위에 놀란 미 대사관 측은 "외교 공관 보호 의무를 규정한 빈 협약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2017년 8월 15일 광화문 광장 일대는 반미 세력의 해방구였다. 이날 범국민평화행동은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반미반전가'를 불렀다. "전 세계 도처에서 미제를 쓸어버리자. 이 시대 민중의 도덕은 반미 반전뿐"이란 노래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에 자극받은 북한의 6차 핵실험(9월 3일), 11월 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발사 강행 소식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반미 성향 정부를 등에 업은 좌파 시위대는 트럼프를 '노망난 늙은이'(dotard)라고 비아냥대면서 전쟁 위협 중단, 미군 철수,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외쳤다.



그해 11월 7~8일 25년 만에 성사된 미국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격렬한 반미 시위에 가려졌다. '반트럼프 반미 투쟁본부'는 국회 앞에서 트럼프를 전쟁광 히틀러 이미지로 패러디한 전단을 태우는 화형식까지 벌였다. 반미 시위는 과격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첫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반미 시위는 급격히 퇴조했다. 트럼프 정부가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턱없이 무리하게 인상하라고 요구해 주권 국가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도 반미 세력은 예상보다 미지근하게 반응했다.

이런 태도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주요국 대사를 역임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반미 진영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략적 계산을 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트럼프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숙원인 종전 선언을 파격적으로 수용해주길 학수고대하는 마당에 트럼프를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좌파들이 치밀하게 계산했다는 분석이다.

반미 세력이 북한의 전략에 따라 '이심전심 주파수 맞추기'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 건설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종전선언, 평화협정, 국교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남측의 반미 진영에 공개적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반미 세력이 앞으로도 은인자중(隱忍自重)할지는 의문이다. 관건은 이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획기적인 진전이 있느냐다. 종전 선언이 이뤄질 경우 반미 세력은 내친김에 한국 정부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미국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촉구하고 나올 것이다.

하노이 담판이 불발되면 트럼프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격렬한 반미 시위를 재개할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반미 세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으로 잠적했을 뿐이란 얘기다. 하노이 회담 이후 반미 세력이 어떻게 탈바꿈할지 눈여겨봐야 할 시국이다.


장세정 / 한국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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