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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친일한 자가 항일한 자에게 상이라니"

"물빛 좋은 통천에서 일제 암흑기 절망 속에 꺼져가는 민족혼 일깨우려고 절규하던 당신의 소리! 신사참배 거부와 독립만세 투쟁으로 일제를 호령하던 그 기백! 평생을 고도고리(高度古利)의 좌우명으로 살았던 지조! 전도자로 불태운 생애와 신앙 속에 오늘도 당신은 섬광 번뜩이는 불멸의 빛으로 탄생하네."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맨 앞줄에 자리한 내 할아버지, 이수정의 묘비에 새겨진 시 문구다. 3월이 돌아 올 때마다 우리 선조들의 목이 터져라 외쳤던 대한 독립 만세! 그 함성 속에 내 할아버지의 절절한 만세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설교단에선 하나님 한 분께만 예배해야지 결코 우상이나 신사엔 참배거부를 설파한 목회자요, 교회 뒤뜰에서 젊은이들의 상투를 깎아주며 개화사상과 민족의식을 깨우쳐 준 사상가요, 밤이면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젊은이들에게 천자문과 명심보감의 글을 가르쳤던 훈장님이요, 김구 선생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강원도 한독당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로서 그분은 자신의 가족은 잊어 버리고 오직 빼앗긴 나라, 나라 잃은 백성들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기미년 3월1일,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문이 발표되자 전국 방방곡곡에선 독립만세 소리가 세상을 깨웠다. 강원도 통천 땅에도 어느 도시 못지않게 독립만세운동이 거세게 전개되었고, 한밤중에 주재소와 읍사무소가 불 타오르고 파괴되었다. 하지만, 왜경들과의 항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결국 내 할아버지는 국가 기물 파괴와 방화 사건의 배후조종 주범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함흥 감옥에서 서대문 형무소로, 강릉 감옥으로 출소할 때까지 6년의 옥고를 치렀다. 감옥 안에서도 신사참배 거부로 전기고문과 린치를 당했다.



서슬 시퍼런 제3공화국 시절, 정부에서 삼일절을 기해 그에게 건국훈장과 선물을 포상했을 때, 감히 친일한 자가 항일자에게 상을 내린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거절했다. 나라 잃은 백성이면 마땅히 독립운동을 해야 하고, 독립운동을 못 했으면 부끄러워해야지, 상을 내릴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하였다. 수상거부 사건으로 할아버지는 방첩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고, 그 후 애국지사(광복회)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그는 생전에 독립유공자 복원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교회가 없는 산촌, 농촌으로 복음 전도자로 생을 마쳤다. (노태우 정부 때, 애국지사로 복원되어 묘소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친일의 자식들은 호의호식했지만, 항일의 자식들은 끼니를 걸렀고 가정은 찢어졌다. 친일의 후손들은 교육과 출세가 보장되었지만, 항일의 후손들에겐 가난과 역경이 대물림이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죽도록 다리가 뛰었는데, 영광은 손이 받았다'는 그분의 설교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유명한 설교는 당시 친일로 입신양명한 자들의 양심을 찔렀다.

"거문고를 타는 소리나 피리를 부는 소리가 손자의 글 읽는 소리만 못하고, 달빛의 색깔이나 꽃의 아름다운 색깔이 나라의 평화스러운 색깔만 못하니라." 내 대학생 시절, 팔순을 넘기신 할아버지가 큰 붓으로 써서 보내 주신 한시다. 하숙집을 옮겨 다닐 때마다 책상 앞에 다시 걸었던 할아버지의 친필 교훈이었다.

우리는 비록 미국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애족 헌신과 순국을 회상하면서 이웃 나라들이 한반도를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결연한 의지와 민족정신으로 조국 번영에 뜻을 모아야겠다.


이보영 / 광복회 미 서부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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