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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반도 동족상잔 유령의 저주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러시아 황제는 사라진다. 왕정을 지지하던 황제군은 소비에트 혁명군을 상대로 결사 항전한다. 당시 상황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 시베리아 동부로 진격한 혁명군은 황제군을 대파한다. 이후 전사자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혁명군만 따로 묻어주자는 의견이 나온다. 혁명군 측 사령관은 이렇게 말한다. "죽어서 혁명군 황제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모두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이다. 다 같이 묻어주자."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한 남북전쟁의 한 일화. 1865년 4월 9일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버지니아 애퍼메톡스 시골 마을을 찾아 북부군 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했다. 리 장군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돌아갈 때 그랜트 장군은 깍듯한 예를 차렸다. 북부군 병사들이 야유를 보내고 환호하려 할 때 그랜트 장군의 한 마디. "남군의 패배를 축하하지 않으면서 우리 기쁨을 표현해야 한다. 그들도 우리 동포다."

19~20세기를 격동의 시간이라 말한다. 나라가 뒤집히고 천지가 개벽하는 시기였다. 너와 내가 동지에서 적이 되어 피비린내 나는 살육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심코 동족상잔이란 말을 자주 하지만, 곱씹으면 이처럼 잔인하고 아픈 말도 없다. 한반도는 2000년을 지나 2020년을 바라보고 있다. 2000년 남북 정상이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 만났고, 18년이 지나 그때 기쁨을 되찾은 모습이다. 누구 말마따나 '잃어버린 10년이 남북관계에도 적용된 셈이다.

남북관계 잃어버린 10년, 한반도가 꿈꾸던 민족동질성과 경제공동체는 좌절됐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초소에 접근한 남한 국민이 피격 사망하자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북한이 '공기방울 어뢰'로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북한은 악마'라는 식의 반공교육에 나섰다. 그나마 염치가 있었는지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건드리지 않았다.



'영애'가 주인공이었던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이란 신조어로 눈길을 끌었다. 동시에 집권 기간 북한이 붕괴할 거라고 확신했다. 영애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시다가 단박에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다. 남북은 얼어붙었고 생각하는 힘보단 원초적 감정이 사회를 주름잡았다.

남북관계 잃어버린 10년의 유산은 '감정적 적대'를 부활시켰다. 빨갱이란 말만 자제했을 뿐 '종북 좌빨'이란 단어로 낙인찍기에 열을 올렸다. 합리적 사고와 건전한 토론은 위축됐고 이분법적 편가르기가 횡행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반성하기보단 적대의식의 확대재생산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역사를 퇴보하게 한 사실이 뼈아프다. 60~70년대식 반공교육으로 청소년과 젊은층에게 북한 불신과 증오를 심은 부작용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종전과 평화선언'을 기대했던 한반도에 먹구름이 꼈다. 관련 기사 댓글 중 북한을 증오하는 글이 제법 많다. 악영향을 우려하는 성찰은 드물다. 지성이 떨어지는 모습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해결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불신과 증오를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이 낳은 유령들의 저주가 이제 그만 사라졌으면 좋겠다.


김형재 /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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