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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뛰는 자와 나는 자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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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9/03/06 미주판 23면 기사입력 2019/03/05 18:32

우리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게 있다.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그보다 나은 사람이 있는 것이니 너무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속담의 '뛰는 자'와 '나는 자'란 주어에 이번 북미회담의 주역들을 대입해 본다.

아쉽게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두 정상 간의 만남은 소문난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TV영상으로 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차는 세기의 볼거리로 단연 인기를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번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중국대륙을 종단하는 긴 여정 뿐만 아니라 '방탄 경호'의 모습도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잘 훈련된 100여 명이 동원된 경호부대라니 정말 만인지상의 국왕의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지난 2월23일 평양역을 출발해 26일 오전 8시 15분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에 있는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이동에만 3박4일 66시간이 걸렸다. 항공편이면 5시간 거리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동부시간 낮 12시 34분께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출발해서 26일 오후 8시 30분께 하노이에 도착했다. 지구를 반바퀴 도는데 20시간이 안 걸린 시간이다. 속담 그대로 김정은은 뛰고 트럼프는 날았다.

'방탄 경호단'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경호팀이 베트남에 도착한 김 위원장을 철통 호위하는 장면은 지난해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보던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앞 단추를 풀어헤쳐 상의가 펄럭이는 12인조 경호단은 V자 대형으로 김정은의 탑승 차량과 같은 속도로 뛰면서 육탄 경호를 펼쳐 탄성을 자아냈다. 외신은 이들을 '러닝 보디가드(running bodyguard)'라 불렀다.

애연가인 김정은 위원장이 열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고 동생 김여정이 커다란 재떨이를 받쳐들고 서있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꽁초에 묻은 생체 정보 노출 방지를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 가운데 많은 사람은 거기서 북한의 왕을 보았다며 웅성댔다. 어느 전직 장관은 "가다가 내려서 담배 피우는 게 상당히 인간적" "동생이 재떨이를 들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지만 어떤 댓글은 이를 두고 '쓸개 빠진 아첨의 극치'라고 꼬집었다.

66시간 열차 행군을 두고 또 어느 한 관리는 "탁월한 선택과 판단" "역사에서의 사열" "두근거린다"라는 댓글을 달았는가 하면 아동 학대 논란을 빚는 북한 집단체조를 보고 "대단하다"고 감탄한 지자체장, "북한 주민은 부러움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정치인도 있었다. 이쯤 되면 아첨이요 아부의 수준이다.

북한과의 비핵화 회담은 결렬됐다. 데이비드 울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문제연구소(ISIS) 소장은 지난해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시설의 일부인 영변 핵 폐기는 무의미하고, 북한 핵물질의 절반 이상이 비밀시설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명이 거의 다한 영변 핵시설의 폐기는 '상징적 비핵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5G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비행기와 열차라는 이동 시간의 의미보다 회담의 진실 그 자체이다. 그런데 중재를 부탁받은 운전자는 차를 몰고 평양과 워싱턴, 어디를 먼저 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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