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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포럼] 이민자 여성들의 투쟁과 '세계 여성의 날'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 노동 보장하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노조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1908년 3월 8일,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랏거스 광장에 1만5000여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더럽고 어두운 작업장에서 하루 12 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노동 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 여성 참정권 보장, 아동 노동 금지,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등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왔다.

'빵'과 '장미'를 요구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는 '빵과 장미'로 압축되었다. '빵'은 저임금에 고통 받던 여성의 생존권을, '장미'는 노조 결성권과 참정권을 상징했다.



이 시위는 다음 해 1909년 11월 '2만 인의 반란'으로 불리게 된 여성 노동자 파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뉴욕에서 섬유 봉제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70 퍼센트 이상이 여성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에 온 유럽 출신 이민자들(주로 유태인과 이탈리아인) 이었다. 노동자들 중 절반 가량은 10대 소녀들이었다. "천천히 굶어 죽느니 지금 죽는 것을 택하겠다"는 외침은 그녀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열악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노동운동은 남성 중심이었다. 나이도 어린 이민자 여성들이 스스로를 조직해 싸울 수 없다는 편견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차별 받고 무시 당하던 이민자 여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과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그리고 뉴욕의 매서운 겨울 날씨에 두 달 이상 계속된 파업은 결국 승리로 끝나 미국 노동 운동사의 큰 획을 그었다.

뉴욕 시위 기념하는 여성의 날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자 여성대회에서 3월 8일의 시위를 기념 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은 이렇게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저항을 이끈 것은 바로 이민자 여성들 이었다. 뉴욕에서 벌어진 이민자 여성들의 투쟁이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어 지금까지 매해 기념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민자 여성들에게 세계 여성의 날은 특히 더 의미가 있는 날이다. 오는 3월 8일, 우리 모두 100여 년 전 거리에 나섰던 이민자 여성들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자고 다짐하면서 모든 여성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주자.

1908년 뉴욕의 이민자 여성들이 싸운 것처럼 지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민자 여성들은 여성이자 이민자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뛰어넘어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싸움에 앞장 서 왔다. 최근의 좋은 예가 작년에 벌어진 시카고 호텔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호텔 하우스키퍼들의 캠페인

호텔업계에서 객실 하우스키퍼는 이민자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직종이다. 업무 특성 상 호텔 객실에서 홀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과 성희롱에 빈번히 노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 측은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객실 손님으로부터 당할 수 있는 성폭력 방지를 위한 행동에 나서 'Hands Off Pants On (만지지말고 바지 입어)'이라고 불려진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호텔이 의무적으로 노동자에게 패닉 버튼을 지급해야 한다는 시카고 시 조례가 지난 여름에 통과되었다.

가을에 벌어진 호텔 파업의 요구 조건 중에도 여성 노동자들을 성희롱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포함되었다. 두 달 동안 이어진 파업 끝에 호텔 측은 위치 추적(GPS) 장치가 내장된 패닉버튼을 모든 하우스키퍼에게 지급하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제 홀로 일을 하다가 성폭력 위험에 처할 경우 바로 보안요원에게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노동자들을 성적으로 괴롭힌 전력이 있는 손님은 호텔 숙박을 금지하도록 하는 규정도 얻어 냈다.

이주자 여성들이 겪는 고통

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지금, 다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으며 이민자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한 해 동안 8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서 체포되었다. 폭력과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여성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비인도적인 가족 분리와 구금이었다. 소위 '무관용 정책 (zero tolerance)'이 얼마나 비인도적인 조치인지는 최근에 나온 보도들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부모와 떨어져 수감된 아이들이 이민 보호시설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문건이 며칠 전 공개 되었다. 2014년에서 2018년까지 이민 구치소에서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집계된 아동이 4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면서 실제는 학대하고 유린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심각한 범죄이다.

뿐만 아니라 2017년 10월부터 2018년 8월까지 2년 동안 이민 구치소에 수감 중 아이를 유산한 여성들이 28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임신한 이민자 여성은 수감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트럼프 정부에서 바뀐 이후 벌어지는 일이다. 이민 구치소에서 유산을 한 여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제대로 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한 여성은 바닥에 엎드리라는 이민국 직원에게 자신이 임신 중 임을 밝혔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알 바가 아니라는 말만 들었다고 증언한다.

위의 예는 지금 반이민 정책 하에서 이주민 여성과 아동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00여 년 전, 이민자 여성과 아동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면 싸웠던 날이 유래가 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으며 그 날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 할 수 많은 이유 중 하나다.


남수경 / 공익·인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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