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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민족 반역자가 지은 '즈믄둥이'

[LA중앙일보] 발행 2019/03/18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9/03/17 15:59

"즈믄의 어린이 숲속에 모여서~ 뜻있네, 이 집에 힘쓰는 배움들~."

졸업한 지 38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휘문의숙' 교가의 마지막 부분이다.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한 것으로 유명한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었다. 순수 우리말인 '즈믄'은 당시 전교생 숫자인 '1000'을 의미한다. 육당은 최근 달라진 민족사 해석으로 친일파 명단에 올랐다. 최근 일부 교사 단체에서 '일제시대 때 앞잡이였던 사람이 지은 교가를 바꿔야 한다'는 압력이 각 학교에 가해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으로 평생 자부심을 지닌 모교의 교가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독립선언문에 관련된 33인 애국자가 일부러 친일행각을 벌인 것도 아닐진대, 개인적으로는 빙산의 일각만 보고 지나간 일에 대한 판단을 바꾸는 일이 역사를 바르게 대하는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논리라면 명성황후의 친척인 민씨들이 고종황제의 명을 받아 설립한 휘문중고 역시 친일파였다는 이유로 폐교돼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아프고 창피한 옛일도 엄연히 역사의 일부다. 비록 육당이 말년에 친일행각을 벌였다고 하지만 얼마나 직접적으로 한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했는가. 그렇다면, 36년간의 일제시대때 안중근·유관순 의사처럼 자기 목숨을 건 채 독립을 위해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99.99%의 2000만 조선 민중은 모두 의식 없는 '부역자'란 말일까.

일본군·남로당 출신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18년간 다스리고 그 딸이 대통령으로 재직한 대한민국 역사도 '일제 잔재'로 다 지워버려야 하는 것일까. 적을 알기 위해 호랑이굴 적지에 유학 간 조선학생들이 96년 전 관동대지진 때 누명을 쓰고 죽창으로 집단 학살당한 것도 '쌤통'이란 말인가.

기해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고려대를 세운 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 철거 논란도 재론된다. 학교 안에 있던 그분의 묘소는 말썽을 막기 위해 벌써 다른 곳으로 옮겼다.

미래지향 대신 과거에 집착하는 태도는 일시적으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발전이 없다. 흥선대원군 시절 쇄국정책처럼 꽉 막힌 고집으로 남을 헐뜯는 당파주의와 뭐가 다른가. 새천년 2000년에 출생한 '뉴 밀레니엄' 용띠 세대가 한국 나이로 어느덧 20세가 됐다. 대학교 또는 직장을 통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주류가 된 것이다. 이들은 선배들의 불합리한 태도와 경제적 어려움 탓에 자기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고 남을 잘 믿지 않으며 오랜 전통에 맹종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기자는 오히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합리적인 태도라고 달리 해석한다.

그 알량한 옛날식 스타일이 남을 배려하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젊은 세대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기성세대 우리 자신에 다름 아니다.

인재들이 '정년 때까지 편하다'는 이유로 공무원·교사 시험에 몰리고 고생하는 중소기업은 외면한다고 한다. 도전 정신이 부족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부족하다고 사방에서 어른들이 야단을 친다.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아 나쁘다며 꾸짖기도 한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며.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한마디로 상관할 자격도, 이유도 전혀 없으며 미국에선 'butt out'(참견마)이란 소릴 듣기 딱 좋다.

21세기에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 건너와 사는 한인들은 자부심을 갖고 주변사람에게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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