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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두 개의 이름으로 살기

이름은 한 사람의 얼굴이며 집의 대문과도 같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이미지가 녹아있고 출생 시의 시대상이 묻어난다. 자신의 이름이 들리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반응을 보이면서 사람과 이름은 하나로 융화되고 혼을 공유하게 된다.

"탄생과 이름은 주어진 것이지 결코 의지가 들어간 선택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미국으로 이주한 탓에 내 의지가 들어간 이름을 만들었다. 나는 30년도 전에 시민권을 얻었다. 둘째 동생도 미국 영주를 희망하시던 친정 아버지 뜻을 생각하고 우선 부모님을 초청할 마음으로 신청했다. 당시만 해도 시민권 얻기가 쉬웠던지, 아니면 변호사 덕분이었는지 몇 가지 질문도 받지않고 금방 시민권 선서를 했다. 망설임 없이 시민권증서에는 미국서 부르기 쉽고 영세 후로 친숙한 '레지나'와 원래 이름의 첫 글자를 조합해서 길게 적어넣었다. '레지나'는 같은 생일을 공유한 가톨릭 성녀의 이름으로 학창시절에 정성스레 선택한 본명이다.

결혼 후 미국에 오자 시부모님과 시집 식구들, 남편, 그리고 시집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친정 부모님도 나를 '레지나'로 부르셨다. 이렇게 두 번째 공식적인 이름 탄생 전부터 나는 서서히 '레지나'로 변신했다. 그럼에도 원래 이름의 상실이 아쉬워서 시민권 증서 외의 모든 서류상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 운전면허증, 크레딧 카드, 보험 증서, 은행 계좌, 부동산 증서, 학교, 라이선스 등등에서는 여전히 원래 이름이 '나'였다.

두 개의 이름이 불편치도 않았다. 출국할 때는 여권으로, 국내 비행기는 운전면허증과 크레딧 카드로 신분이 증명되었다. 배심원 출석 메일만 다른 이름으로 번갈아 와서 곤란했다. 그런데 친정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상속과 세금 문제로 복잡해졌다. 모든 서류에 '동일인 증명'이 첨부되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서류상의 '레지나'와 친정 안팎으로 통하는 원래 이름의 나, 미국에서는 원래 이름인 서류상의 '나'와 일상에서 통하는 '레지나'가 생겼다.



이름 바꾼 것을 후회도 했다. 미국서의 삶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본질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친정 부모님은 둘째 동생이 영주권을 받은 후 곧바로, 동생은 혼자 남으신 엄마를 돌보기 위해서 여러 해 전에 한국으로 영주 귀국하면서 영주권을 포기했다. 효도하려고 재빨리 얻은 시민권의 숨겨진 뜻도 퇴색해버렸다. 나를 '레지나'로 부르시던 엄마는 치매가 생긴 이후로 원래 이름만 알아들으신다.

"끝까지 이렇게 지내도 될까? 몇 년 후에는 메디케어 문제도 생길 텐데…" 이름 일원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작년 가을에 단단한 결심을 하고 미국 서류들의 이름을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소셜시큐리티'를, 몇 달 후에는 '면허증'을, 또 몇 달 후에는 크레딧 카드와 은행 계좌를, 그리고 현재는 다음 것들을 진행 중이다.

어느 이름에 '나다움'이 더 녹아있는 지 모른다. 하지만 '레지나'로 불리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또 삶을 단순하게 만들 때다. 이름에 나만이 인지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은 위로가 된다.


정 레지나 / LA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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