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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포럼 ] 정신건강·약물남용 치료…교육·복지 서비스

윤성민 / 뉴욕차일드센터 부회장
윤성민 / 뉴욕차일드센터 부회장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3/26 미주판 11면 기사입력 2019/03/25 16:20

뉴욕차일드센터 윤성민 부회장이 그룹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뉴욕차일드센터]

뉴욕차일드센터 윤성민 부회장이 그룹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뉴욕차일드센터]

커뮤니티 포럼 연재를 시작하며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유학생 신분이었던 필자는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중 눈에 띈 것이 당시 퀸스 엘름허스트에 위치한 아시안 클리닉이라는 기관이었지요. 당시 퀸스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 (Queens Child Guidance Center)라는 기관이 운영하던 정신건강 및 약물 남용 외래 클리닉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인 임상 사회복지사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단번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입사원사를 낼 당시 그곳이 어떤 기관이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을 돌보는 기관이려니 생각했었습니다.

차일드 가이던스 운동

1차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엘름허스트 근처에 있던 건물 1층에 위치한 클리닉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클리닉 소장인 아그넬로 디아즈(Agnelo Diaz) 박사는 아시안 클리닉이 퀸스 지역에 급증하고 있는 아시안 이민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와 알코올 및 마약 문제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퀸스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가 1993년에 설립했다고 설명하더군요. 그전까지만 해도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던 필자는 조심스럽게 디아즈 박사에게 질문을 했지요. "혹시,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교회 병설 유아원에서 숙식하며 통학버스를 운전했던 경험이 있어서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도 비슷한 유아원과 비슷한 기관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디아즈 박사는 퀸스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가 1953년에 세워진 기관으로 초창기에는 어린이들의 정신건강 및 행동상의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차일드 가이던스 운동이 1920년대 시작되었고 1930년대 초에 미국 전역에 42개의 클리닉에 설립될 정도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고 부연 설명을 하더군요. 차일드 가이던스 클리닉에서는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및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들이 팀을 이루어서 아이들의 정서와 행동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 사회복지, 의료 등의 부가적인 서비스도 제공했다고 합니다.

1953년에 설립된 기관

그 설명을 듣고 있던 필자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1920~1930년 대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오려 보았습니다. 당시,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나라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온갖 탄압과 약탈을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민족의 선구자들은 오로지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고자 1919년에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수립해서 치열한 독립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3·1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1926년에는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1932년에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가 있던 해이기도 합니다. 역사 기록물에 남아 있는 흑백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선조들이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민중들의 치열했던 삶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퀸스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가 세워진 1953년은 한국 전쟁이 끝나던 시기였습니다. 6·25 전쟁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어 있었지요. 전쟁의 상흔은 단지 무너진 건물과 파괴된 산하에만 국한되지 않았었습니다. 전투에 나간 아버지는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홀로 남겨진 고아와 어머니는 살아갈 길이 막막하여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뉴욕차일드센터 16년 근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더군요. 우리 선조들이 하루하루 치열하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존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었을 당시,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정신건강과 복지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두 나라의 차이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심리.정신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두 나라 국민의 시각 차는 당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플러싱에도 클리닉 오픈

돌아오는 길에 인터뷰를 마무리하면 들려주던 디아즈 박사의 말이 귓전에 맴돌더군요. "성민, 자네가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 다양한 일을 해야 할 거야. 이곳은 사무실에 앉아 상담만 하는 곳이 아니라네. 지역사회에 나가서 정신건강 문제를 알리고, 예방하고, 더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네. 그걸 할 수 있겠나?" 취업비자를 해 준다는 말에 선뜻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어떻게 또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필자는 엘름허스트에 있던 퀸스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 산하 아시안 클리닉에서 정신건강 담당 임상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기 시작해서 지난 16년간 같은 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품었던 묵직한 사명감과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달려왔지만, 가야 할 길이 멀고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퀸스 차일드 가이던스 센터는 뉴욕차일드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엘름허스트에만 있던 아시안 클리닉도 2007년 플러싱 클리닉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6년 간 필자는 정신건강 상담사, 수퍼바이저, 아시안 클리닉 소장, 플러싱 클리닉 소장을 거쳐, 2017년부터는 뉴욕차일드센터 본부 부회장으로 직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연간 3만여 명에게 도움

뉴욕 시민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뉴욕 전역에 80개가 넘은 클리닉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한 해 3만여 명의 아동, 청소년, 성인 클라이언트 및 그 가족들에게 다양한 정신건강, 교육,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인들은 주로 플러싱 정신 건강 클리닉 및 약물 남용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편이지요. 그 밖에도 많은 프로그램과 혜택이 있는데 라틴계나 중국계 주민들보다 한인들의 이용률은 높은 편이 아닙니다.

필자는 앞으로 뉴욕차일드센터의 프로그램과 서비스들, 그리고 지난 16년간 일하면서 느꼈고, 또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들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한인이 뉴욕차일드센터가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들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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