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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한·일 관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한·일 관계 악화는 쌍방 과실이고 서로에게 손해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보상만 요구하는 한국도, 사과와 보상은 더는 못 하겠다는 일본도 역사의 포로다. 상대방을 비판할 줄만 알지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내동댕이치는 것도 서로 닮은꼴이다. 양국 관계는 전략적으로 방치되고 '무대책이 상책'인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할 때 한·일 관계는 '역사는 역사, 협력은 협력'이라는 투트랙 접근법을 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역사만 추궁하고 협력은 간데없다. 일본은 만만하게 두드리면서도 중국에는 낮은 자세로 일관하는 게 현재 모습이다. 국민이 미세먼지의 많은 부분이 중국에서 온다고 알고 있는데 중국 이야기는 빼고 얘기한다.

'일본쯤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지 의아하다. 북핵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안보 위기가 올 때 미·일은 우리 안보의 린치핀(Linchpin)이다. 만약 경제가 더 나빠져 위기 상황이 도래하면 일본은 한국의 안전판이다.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희망 고문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평화는 기적처럼 오지 않지만, 위기는 악몽처럼 다가올 수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목표를 추구해야 하지만, 어려운 때를 대비할 줄 아는 복안(複眼)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는 게 국민이 바라는 거라는 인식은 착각이다. 모든 한국인이 일본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게 아니다. 2018년 만에도 754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 관광을 다녀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한국에서 큰 인기가 있다. 기성세대의 감각으로 젊은 세대의 균형감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정치인들이 아니라 기업인들이 가장 먼저 손해를 보게 되고, 결국 죄 없는 국민만 억울하게 갈등의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일본이 원죄가 있고 잘못된 나라인데 밀어붙이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이고 국제사회에서 더 영향력이 있는 국가라는 사실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지만 힘을 키우지 않는 민족도 미래가 없다. 과거사에 집중하며 반일에 골몰할 게 아니라 일본보다 더 잘 살고, 힘이 있으며, 활력이 넘치는 나라로 키우는 길을 찾는 게 실사구시의 정치다.

외교는 상대가 있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일본과 척을 지는 게 우리에게 무슨 실익이 있나? 미·일이 앞장선 인도·태평양전략에서 한국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있다. 미·일이 우리를 절대 안 버릴 것이라는 바람은 지켜질 수 있나 곱씹어봐야 한다. 한반도에 우리 민족끼리의 평화만 오면, 동북아 정세를 우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지도 자문해 볼 때다. 한반도의 지정학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둘러봐야 한다.

과거사가 한·일 관계의 전부가 아니다. 남을 욕하기에 앞서 우리를 돌아보고, 과거를 향해 뒤로 갈 게 아니라 미래의 힘을 키울 수 있어야 국민은 안심한다. 우리가 한·일 관계를 무시하고 방치하면서 일본에만 할 도리를 하라고 외치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서로 진지하게 소통하고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면서 실리를 모색하는 게 외교다. 외교에서 일방적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철희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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