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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무기여 잘 가거라

헤밍웨이의 소설 중에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이에게 감명을 준 작품입니다. 오늘 제가 나누는 이 이야기는 제목과는 달리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설이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니고 사는 무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군인이 아닌데도 살면서 저마다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장을 하고 있다는 말은 무언가 지키려고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그렇게 지키려고 할까요? 무엇을 잃어버릴까봐 안절부절 하고 있을까요? 뭐가 그렇게 두려울까요? 지킬 것도 잃어버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어진다면 무기는 필요 없을 겁니다.

오늘은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박성배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1964년 박성배 선생님께서 학생들과 성철 스님을 만나서 말씀을 청했을 때, 성철 스님은 먼저 법당에서 3000배를 할 것을 요구하셨다고 합니다. 13시간에 걸친 3000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선생님은 무장해제의 경험을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강제로 하는 무장해제가 아니라 스스로 무기를 내던진 무장해제의 경험 말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잔뜩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걸리는 것도 많습니다. 여기저기에 치입니다.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자존심도 명예도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자신에게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저는 무장해제의 경험을 하신 선생님이 부러웠습니다. 저도 3000배를 하고, 성철 스님의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장해제 후 들었던 성철 스님의 말씀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걸림이 없는 받아들임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선생님이 출가를 위해 다시 성철 스님을 찾았을 때는 21일 동안 매일 3000배를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께도 그렇게도 없애야 할 무기가 많았다는 말입니다. 저는 얼마나 많은 절을 해야 할까요?

극한의 상황을 맞이하면 사람은 의도치 않게 무장해제가 됩니다. 어쩌면 세상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게 큰 병인 경우도 있고, 시련인 경우도 있습니다. 죽음이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무장해제이겠지만 큰 시련은 걸림돌을 제거하고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힘든 병에 걸린 분이 마라톤을 하고, 철인삼종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병마저 이겨 버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약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더라도 그 분은 자신의 걸림돌을 이겨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한 번의 무장해제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속에는 새로운 무기가 생겨나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새로운 걸림돌이 마련되는 것이지요. 무기는 자신을 감싸고 편견이 되고 선입견이 됩니다. 편안함이 주는 안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가는 또 다른 의미의 무장해제일 겁니다. 일체의 편안함에서 떠나는 것이지요. 출가조차 편안함이 된다면 또 떠나야겠죠. 박성배 선생님은 교수직을 버리고 성철 스님이 계신 곳으로 출가를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퇴속(退俗)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계속 되는 떠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계속되는 실패라고 표현하셨지만 저는 계속되는 성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무기를 마음에 품고 살까요? 무엇을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나를 보호하려는 수많은 마음이 그대로 걸림돌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요? 진리를 향해, 깨달음을 향해 내려놓고 버려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더 깨지고 더 힘들수록 무기는 강해지는 게 아니라 없어질 겁니다. 내가 지금 힘들다면 그건 내 무기가 하나씩 나를 떠나는 귀한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무기를 버리고 무장해제 되는 경험을 해 보고 싶습니다. '무기여 잘 가거라'라는 말을 외쳐보고 싶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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