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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임시정부 100년의 열매

[LA중앙일보] 발행 2019/04/12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4/11 19:31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 어제(4월11일)로 꼭 100년이 되었다. 이날은 '대한민국' 국호 탄생 100년, 우리 헌정사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 문건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정 1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100년의 무게는 개인의 기억만으로 감당하기는 버겁다. 기억이란 지극히 선택적이어서 여기저기 단절되거나 왜곡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남은 기억도 때론 윤색되고 편집된다. 기억은 기록과 함께할 때라야 역사가 된다. 기억은 있되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이비 역사로 흐르기 쉽다. 기록은 있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리 빛나는 역사라도 정치나 이념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만다.

전에 몰랐던 새 기록이 발견되면 역사도 새로 써야 한다. 빠진 곳은 채워 넣고 틀린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한다. 올해부터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이 4월13일에서 4월11일로 바뀐 것도 그런 차원일 것이다.

4월13일을 처음 국가기념일로 정한 것은 1989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였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펴낸 '한일관계사료집' 4월13일조의 "국내외 인민에게 정부 수립을 공포했다"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에서 임시정부 관련 기록들이 새로 발견되었고 이를 연구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수립일은 4월11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었다. 결국 정부가 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임정 100주년인 올해부터 기념일이 공식 변경된 것이다.

다른 의견도 여전히 있다. 3·1운동 이후 비슷한 시기에 국내외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7곳이나 된다. 그중 실질적인 조직과 기반을 갖춘 곳은 상해와 한성정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노령임시정부) 3곳이었다. 각 지역 지도자들은 진통 끝에 통합에 합의했고, 1919년 9월11일 상해에서 통합 임시정부가 정식 출범했다. 따라서 진정한 임시정부 수립일은 9월11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 관점이 다르면 해석도 달라진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역사란 있기 어렵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였지만 민족주의, 사회주의, 무장투쟁파 등 여러 분파가 얼키고설켜 갈등과 분열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상해 임시정부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이념적 정부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어 왔다는 점, 또 8·15 광복 때까지 단절되지 않고 존재한 유일한 조직으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꾸준히 표명해 왔다는 점 등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충분히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결론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뿌리가 상해 임시정부에 직접 닿아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919년 4월11일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공표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1948년 7월 17일의 '제헌헌법'으로 계승되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 불변의 1조가 되어 있다.

100년 전 헌장을 계속 읽어본다.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無)하고 일체 평등임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信敎)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信書)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제10조, 임시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개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대한민국 원년 4월 일,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어서 빨리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모든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민족 선각자들의 꿈이 지금도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열매가 바로 지금 대한민국이다. 아직 분단극복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은 기억하고 기념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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