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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노트르담

[LA중앙일보] 발행 2019/04/17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4/16 19:56

화재가 발생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원래 이름은 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줄여서 노트르담(Notre-Dame)으로 지칭된다. 프랑스어 노트르(Notre)는 '우리의', 영어로 말하면 Our이다. Dame은 '부인·마님'의 마담(madame)에서 소유형용사 ma(나의)를 빼고, d를 대문자를 써서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따라서 노트르담은 '우리의 성모 마리아'이다. 이 성당은 이름처럼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수호성인)으로 봉헌되었다. '유럽 관광지의 태반은 성당'이라는 말처럼 유럽에는 많은 성당이 있는데, 상당수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돼 노트르담이란 명칭은 여기 저기에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노트르담은 파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칭한다.

노트르담 성당은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으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돼 지금의 큰 골격은 1250년에 마무리되었다. 나머지 부분 공사는 약 1세기 동안 진행되어 1345년에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이 시기를 세계사에 견주어 보면 1206년 몽골의 테무진이 칭기즈칸이 돼 1271년 원나라가 세워졌다. 1299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건국됐고, 1337년 백년전쟁이 발발했다. 1347년 유럽에 흑사병이 대유행했으며, 1368년에는 중국의 명나라가 건국됐다. 한국사로 보면 고려 18대 의종~29대 충목왕 시대였다. 1335년 태어난 이성계가 10살 때 노트르담은 완공됐고, 이후 47년 후 조선이 개국했다. 사실상 보통 사람이 알고 있는 세계사의 마디마디는 '노트르담 이후'의 역사인 셈이다.

1456년 이곳에서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이 열려 이미 종교재판으로 화형(1431년) 당한 잔 다르크의 이단 판결과 마녀 혐의가 취소되었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1794년) 당시 귀족문화, 종교문화를 증오하는 시민들에게 첨탑 등이 훼손되고 성당 내부가 외양간으로 쓰이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흔히 '노트르담의 꼽추'로 알려진)이 인기를 끌면서 평가도 좋아져 간신히 재건된다.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이 장면은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엄청나게 큰 그림(610×931㎝·1807년 작)으로 묘사했다. 무엇보다 이 걸작은 세계 1차 대전과 참혹했던 2차 대전의 포화에도 굳건히 버텨왔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초기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고딕 양식은 이탈리아가 아닌 그 북쪽에 위치한 프랑크 왕국 계열의 건축양식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로마 제국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이탈리아인들은 '야만적인(고트족)'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던 '고딕'을 갖다 붙였다. 찌를듯한 높이의 첨탑과 외부로 튀어나온 많은 기둥들, '빛'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한 넓은 면적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특징이다.

LA시간 15일 아침 비보를 접하고 96미터 높이의 첨탑과 1300그루의 참나무로 이뤄진 지붕이 붕괴하는 것을 보면서 이튿날이면 참혹한 검은 숯 더미를 예상했지만, 성당의 기본 골조와 상징과 같은 전면 탑 두 개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 '장미 창'은 온전한 편이라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500여 명의 소방대원이 진화작업에 나설 때, 성당 내 역사적 유물의 재질과 위치를 잘 알고 있는 문화관리자 100여 명이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복원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비록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5년 이내(2024년 파리 올림픽) 재건하겠다고 하지만, 그건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들에게는 정치에 앞서 예술에 대한 사랑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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