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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산불 봉사자 "구호물품에 빨지 않은 속옷 보내 토할뻔"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4/18 18:10



강원도 산불 자원봉사자들이 전국에서 온 구호 물품 중 헌옷을 분류하는 중이다. [자원봉사자 황씨 제공]





강원도를 휩쓴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지 2주가 흘렀다. 화마는 하루만에 진화됐지만 현장은 복구 작업으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피해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구호물품과 자원봉사 지원 등 온정의 손길도 쏟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2만여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자원봉사를 신청, 피해 복구에 힘쓰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관광을 위해 숙소를 예약했다가 봉사활동을 하고 간 사람들도 있다.

최근 5일간 속초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일한 황모(29·여)씨와 이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 강원도 속초시 소호게스트하우스 주인 이상혁(33)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구호 물품과 편지 보며 "아직 살만 하구나"



[ 자원봉사자 황씨 제공]





서울시 방화동에서 속초 자원봉사센터를 찾아간 황씨는 지난 11~12일, 14~16일에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전국에서 온 구호물품을 이재민에게 전달하기 전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황씨는 1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강원도 산불이 국가적 재난으로 선포되면서 자원봉사를 결심하게 됐다"며 "차비만 10만원이 들었다. 그래도 숙소가 제공돼 5일 간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이런 일에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차비 걱정만 없으면 또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재민들에게 온 손편지를 보면 아직 한국은 살만하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또, 작업을 하다보면 옷을 몇벌은 버리게 되는데 자원봉사자를 위한 작업복을 받았을 때,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편지를 읽을 때마다 뭉클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황씨 제공]





편지를 보고 자원봉사자들과 다함께 운 사연도 전했다. 황씨는 "돌아가신 아내 분 이름을 써서 구호 물품을 보내온 분이 있다"며 "편지에 '좋은 곳에 너의 이름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쓰여 있었다. 다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다.

"쓰레기 구호품…20~30명이 헌옷 분류 매달려"
황씨는 일주일 가까이 분류 작업을 하면서 기분이 좋을 때도 많지만 황당한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황씨는 "새옷같은 헌옷을 보내주는 분들도 있지만 먹다 남은 약, 먹다 남은 음식물,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과 약 등 쓰레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황씨는 "한 번은 헌옷을 정리하다 장농 썩은 냄새, 빨지 않은 속옷 냄새를 맡고 구토를 할 뻔했다"며 "정리하다 집에 가면 미세먼지가 있던 날처럼 눈이 따가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황씨 제공]





제일 황당했던 물건은 빨지 않은 속옷과 약을 다 먹고 두 알 남은 상태로 보낸 경우였다. 충전기인데 전선 등이 다 뜯어진 채 온 경우도 있었다. 그는 "빨지 않은 속옷, 보풀이 심한 옷, 얼룩진 옷 등 입을 수 없는 쓰레기를 보내면 화가 난다"며 "20~30명이 헌옷 분류에 매달려야 한다. 안 그래도 손이 부족한데 쓰레기를 보내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정리하면 10박스에 1박스는 이런 것들"이라고 전했다.

"친형제가 각각 봉사 왔다가 현장에서 만나기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4년 전 강원도 속초시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이상혁(33) 사장도 자원봉사자를 위해 숙소를 제공하고 본인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이 사장은 1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서 살다 와서 이런 산불은 처음 봤다"며 "옆에서 지켜보다 도와드릴 게 없나 고민한 결과 숙소를 제공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사장의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자원봉사자는 평일 평균 5명 주말 평균 10명 정도다. 이 사장은 "평일에는 자원봉사자를 오는 대로 받고 있다. 주말에는 미리 예약한 손님 방을 제외하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최대한 제공한다"고 전했다. 이 사장의 게스트하우스에는 한번에 47명이 묵을 수 있다. 이번 달까지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할 계획이다.




[자원봉사자 황씨 제공]





이 사장은 "부산·파주·대구·포항 등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온다"며 "관광을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가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숙소비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재밌는 일화도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형제들이 각각 자원봉사를 신청해 게스트하우스 휴게소에서 만난 일도 있었다.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 봉사를 왔다가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일도 있었다. 봉사를 하면서 알게된 손님들이 다함께 모여 다시 봉사를 오기도 한다.

이 사장은 "저도 불난 다음 날부터 속초 센터에서 구호물품을 나르는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처음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한다고 했을 때는 봉사활동을 많이 오실까 걱정했지만 사회가 아직 따뜻하다는 걸 느껴서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통당국 "자원봉사자에 KTX 비용 지원"



KTX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뉴스1]






교통당국은 강원도 자원봉사센터(033-253-2500)와 협의 후 봉사활동을 위해 열차를 이용하면 모든 열차(KTX 특실 제외)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효율적인 자원봉사를 원하는 경우 먼저 전화로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게 좋다고 한다. 너무 많은 자원봉사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일 자원봉사 인원을 한정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확인증이 있으면 KTX 비용을 환급받을 수도 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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