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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자본주의 모순을 외치는 사람들

김병일 / 경제부 부장
김병일 / 경제부 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9/04/2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4/22 18:27

공동체 문화를 결정하는 것은 이념일까, 아니면 물질적 힘(기득권)일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고, 여기에 일부나마 동의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장경제의 상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도덕이나 법, 정치는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본가 권익을 위해 형성된 것이고 대부분의 시민, 또는 국민인 피지배계급은 이런 상부 구조를 통해 길들여지고 있는 것일까? 자본가의 착취가 가능한 것도 체제를 위해 훈련된 노동의 순응 때문이라는 주장에 귀가 솔깃한 것은 왜일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반 노동자와 CEO와의 임금 격차는 당연한 것일까? 이것은 나만의 의문이 아니다. 150년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이어질 진행형이다.

칼 마르크스는 상품가격(가치)이 생산에 투입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논리(노동가치론)를 기반으로 착취이론을 주장했다. 노동이 가치의 유일한 창출자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게 순리이고 이는 가격과 일치해야 한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기업주는 가격만큼 보수를 주지 않고 이윤으로 자기 몫을 챙기고 노동자에게는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임금만을 주는데, 이게 바로 착취라고 말했다.

또 기업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저임금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자본을 축적하려 한다. '축적하고 또 축적하라.' 이것이 자본주의의 진리다. 착취를 통해 생긴 이윤은 다시 재투자된다. 축적의 경쟁은 독점화와 기업 몰락을 몰고 온다. 이는 대기업의 횡포와 착취, 그리고 실업으로 이어진다.

생산은 늘어나지만 노동 대중은 수요 능력 부족으로 소비를 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견했다. 이때가 150년 전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우주를 오가고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인터넷으로 정보의 물결이 넘실대는 문명 시대가 됐지만 150년 전의 고민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자본주의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는 결정체다. 하지만 이런 미국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일부 학자의 주장을 넘어 이제는 의회에서, 그리고 대선 출마자, 기업가까지 공공연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대선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나 엘라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연방 하원의원을 꼽을 수 있다. 경제계는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겸 최고경영자, 디즈니사의 상속녀이자 자선사업가인 애비게일 디즈니,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가 있다. 이는 모두 내 개인 의견이 아니라 뉴욕타임스와 어깨를 겨루는 워싱턴 포스트(WP)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이 21일 전한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자본주의의 재 해석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레베카 핸더슨은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점점 더 기업과 정부에 대해 시니컬해지고 있으며 미국과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본주의가 야기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소득의 불평등 확대와 기회의 상실이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가 기득권 세력을 위한 장치로 변질하고 있다면, 생산 수단을 쥔 자본가가 노동을 지배하는 모습이 심화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시대가 됐고 부의 세습뿐만 아니라 권력과 고등 교육이 세습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계급을 만들어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불평등과 분노의 원인이라는 깨달음이 더 커져야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밝아질 수 있다. 체제에 순응만 하는 삶으로는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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