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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살생을 하지 말며

양은철 교무 /원불교 LA교당
양은철 교무 /원불교 LA교당 

[LA중앙일보] 발행 2019/04/23 종교 26면 기사입력 2019/04/22 18:43

며칠 전 한국에서 낙태죄 헌법불일치 판결 이후 낙태 찬반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도 낙태 찬반논쟁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이다. 우리가 그토록 추앙하는 '생명'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소 유물론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인류에게 의미를 갖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물리적 생(生)을 전제로 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여태껏 생명을 경시하는 어떠한 철학적, 사상적 사조도 접해보지 못했다.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는 물론, 더 이상 출생을 하지 말자는 반출생주의 역시 출발은 생명의 존중과 사랑이었을 것이다.

생명의 가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호랑이를 죽여도 살생의 과보를 받게 될까? 자이나교의 주장처럼 걸어다니면서 의도치 않게 죽이는 무수한 미생물과 작은 곤충들을 죽이는 죄업은 어찌할까? 생존을 위해 죽고 죽이는 동물들에게도 살생의 과보가 존재할까? 고기는 그렇다 치고, 넓은 의미에서 식물도 생명체라고 본다면 쌀과 야채를 먹는 것도 죄업을 감수해야 하는가? 불법을 믿고 따르는 불자라 하더라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려울 것이다.

한 제자가 교단의 과수원을 맡아 소독과 살충 등으로 많은 살생을 하게 되자 마음이 불안하여 대종사께 여쭈었다. 대종사께서는 "과보는 조금도 두려워 말고 사심 없이 공사에만 전력하면 과보가 네게 돌아오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조금이라도 사익을 취함이 있다면 그 과보를 또한 면하지 못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 하셨다. 사회에서도 정당방위라 하여 정당한 자위권이 인정되는 것처럼,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하게 행사되는 살생에 대한 과보는 진리적으로도 참작되리라 생각한다.

호흡이나 길을 걸을 때와 같이 의도치 않은 살생이나 쌀과 야채의 섭취는 불자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원불교에서는 살생계문 앞에 '연고 없이'를 붙여, 최소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단, 연고 있는 살생이라도 측은한 마음으로 하라 하셨다. 측은한 마음이 없이 살생을 하면 대중에게 살벌한 분위기를 만든 것과 피살된 상대방의 보복 등 두 가지 인과가 있으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하면 한 가지 인과뿐이다. 어느 경우에든 예외를 최소화해야 함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하겠다.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ㆍ우주가 생성되고 존속되고 무너지고 공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인간의 생로병사는 자연의 이치이므로 살생계의 진의는 물리적인 면보다 생명 존중에 대한 '태도'에 있다 하겠다. 생명에 대한 지극한 존중과 경외 없이는 성자들의 어떠한 가르침도 실천하기 어려울 것이다.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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