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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이민자의 '인생 이모작'

[LA중앙일보] 발행 2019/04/24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4/23 20:30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인생 역시 시작보다는 마지막이 훨씬 중요하다.

"우리 집안이 조선시대 때 영의정과 왕비를 배출한 가문인데…" "내가 과거에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 사장을 지냈던 사람인데…" 누구나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한두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모두 지금의 현실보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부족한 사람일수록 옛날 일을 따지고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모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한인 동포들의 경우 대부분 합리주의 인생관을 추구한다. 출발은 한국에서 했지만 종착역은 전혀 새로운 곳에서 마무리짓겠다는 '진취적 사상'인 셈이다. 개인보다는 가족, 특히 자식의 장래를 염두에 둔 자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후회보다는 "오길 잘했다"는 자긍심이 많을 것 같다.

미국은 243년 전 독립 이후 지구촌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며 만민평등 사상을 실천하고 있는 나라다. 물론 과거 노예제·인종차별 같은 어두운 면도 존재하지만 조국을 떠나온 개척자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에게 미국에 한 번 오라고 했더니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에서 적성국가로 낙인 찍은 나라에게는 관광비자도 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남미에서도 가이드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고 "미국 오는 일이 쉽지않게 변했구나"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인들 역시 이민 초창기에는 노동자 신분으로 본토 대신 하와이에 먼저 정착해야 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60년대까지도 백인 이외에는 합법 이민이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 출신인 라틴계 이탈리아 이주민과 유대계조차 20세기 중반까지는 '진짜 미국인' 취급을 받지 못한채 멸시 당했으며 이는 마피아 조직이 창궐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도 인종·종교·지역 차별에 따른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법으로 각종 불합리를 억제시키며 사람들의 완고한 사고방식이 바뀌도록 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18년 전 테러 이후 미국은 더 안전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더 오고 싶어하는 국가가 됐다.

잠재력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의 젊은 인재들이 자꾸 조국을 떠난다고 한다. 민족사관고·대원외국어고·서울외국인학교 등에서 교육받은 한국의 수재들이 아이비리그·스탠포드·MIT로 건너오는 사실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원인이야 여러가지겠지만 불비한 행정법규·아집과 독선이 판치며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 사회 분위기·여성과 장애인 및 다인종에 대한 차별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세상만사가 모두 다양하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정치·종교분야에서 자기 것만 옳다고 강권하는 고집이 미국과는 가장 큰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더욱 심해졌지만, 한국 사회(미주 포함)는 미래와 관련된 설계보다 과거의 나쁜 일을 되풀이해 반복적으로 끄집어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응징' '보복'이 이뤄질 때까지 수사와 인권 유린도 그치지 않는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솔직한 자기반성이나 실수 인정 대신 다른 사람, 특히 힘이 없거나 아랫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핑계를 대는 부작용도 벌어진다.

떠나온 조국에서는 보신주의가 확산되며 나날이 모험심·패기도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곳 낯선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자발적 귀양살이'로 인생 이모작을 가꿔나가는 미주 한인들에게는 깊은 존경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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