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봄 편지를 읽고

어제도 기다렸습니다. 진달래 세 뿌리 보냈다는 소식에 아직 오려면 먼 길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국악 동요(봄 편지/서덕출)를 부르며 기다림을 달래봅니다.

생각지 못한 선생님의 봄 편지가 먼저 당도했다는 전언에 차마 열어보지 못하고 하룻밤이 지났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 내내 모셔 두었다 아련한 달빛 아래 봄 편지를 읽습니다. 점점 둥글어 가는 달님만큼 감사도 만월이 됩니다. 무심결에 한 번 오라시니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그 숲으로 마음 먼저 보냅니다. 삐~삐 어디선가 들려오는 서툰 호드기 부는 소리, 얕게 흐르는 시내에 버들가지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냇둑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앉아있습니다. 춘흥이, 석란이, 금자, 우르르 몰려다니던 말썽꾸러기 머슴애들도 말 수가 적던 반장 아이도 그저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십리 길을 걸어오는 등굣길에 통통한 삘기를 뽑아다 주던 명자가 처음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날이 생각납니다. 사랑채에서 들리는 글 읽는 소리에 "너의 아버지 노래하시냐?"고 깜짝 놀라던 아이, 그 순진한 어린 마음에 담겨있던 넉넉함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고마움으로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참으로 맑은 마음을 지녔습니다. 봄볕이 따스한 논두렁에서 쑥이랑 냉이를 뜯던 봄나물만큼이나 향기로웠답니다. 청보리밭에서 달래라도 발견하면 종다리 솟구치듯 기쁨이 날아올랐지요. 시큼한 까마중과 보리수 몇 알에도 봄날의 산수유처럼 밝게 웃어대곤 했습니다. 오늘은 진달래 철쭉 지천이던 삼태봉을 오르고 싶습니다. 누군가 문둥이 온다! 소리치면 넘어지며 내달리던 산기슭에 숨을 고르고, 양지바른 할아버지 무덤가에 앉아 할미꽃이랑 놀다 오겠습니다.



하얀 머릿수건을 쓰신 엄마가 찹쌀 풀을 바른 여린 가죽나무 잎을 채반에 담아 장독 위에 놓습니다. 매실주를 담가 놓고 흐뭇해하시던 엄마가 간장을 담그는 날에는 마른 고추와 숯을 네가 넣어 보라 하시지요. 장독대 옆 언덕에는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고 다람쥐는 안방까지 들락거립니다. 엄마에게 가는 길, 밤 껍질을 피해 한 발 한발 숨차게 오르면 산등성이에 은방울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그늘에 진달래 꽃잎이 순하게 핀 외길을 걸어 산 정상에 다다르면 산들바람이 살랑입니다. 햇살에 은모래가 반짝이는 강물이 눈 아래 펼쳐집니다. 천상에서 백수를 맞은 엄마의 치맛자락처럼 길섶에 하얀 찔레꽃도 피어있습니다.

오늘은 진달래가 안고 오는 그리움을 마중 갑니다. 끝없이 펼쳐진 자운영 꽃 사이로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춤을 춥니다. 들판을 지나 언덕을 넘어 푸르고 맑은 숲속, 빛 고운 오솔길을 한없이 걸어갑니다. 감사의 새싹 손수건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박계용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