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흩날리는 민들레 꽃씨 되어

봄에는 민들레 꽃씨 되어 그대 곁에 날아 가리라. 후 불면 허공에 흩어지는 풀잎 같은 생명일지라도 곁가지에 붙어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대 곁에 다가 가리다. 모진 목숨 살아있기만 하면, 무거운 생의 커텐 제치고, 무심한 세월 억울해 하지않고, 잊어버린 날들 탓하지 말고, 그대 창가에서 찬란한 봄을 노래하리.

민들레는 들꽃이다. 모진 풍파와 험난한 세월에도 생명 끈 놓지 않는다. 겨울 동안 튼실한 땅 속 뿌리로 지내다가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잎과 꽃을 피운다. 민들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다년초)로 키 작은 앉은뱅이 꽃이라서 밟아도 잘 죽지 않는다. 죽어도 살아난다.

어릴 적엔 동무들과 민들레 꽃씨 따서 호호 불며 동구밖 흙담길을 찾아다녔다. 할미꽃 닮은 민들레 씨는 할머니의 서리 내린 흰머리처럼 바람개비로 창공에 흩날렸다. 푸르른 하늘 뭉게구름 속을 나는 민들레 꽃씨 따라 유년의 꿈도 무중력으로 하염없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나. 칼럼쓰기 시작 한지도 어연14년. 장편소설 두 권과 자전 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 처럼'이 출간 된 후, 칼럼 써 본 경험이 없던 내가 불모의 땅에 깃발 꽂는 심정으로 칼럼 쓰기를 시작했다. 역사는 하루도 건너뛸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한 주도 빠짐없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몸이 아플 때나, 어머니를 보내드린 날도 칼럼을 썼다. 칼럼은 내 인생의 겸허한 기록이고 흩날리는 생의 작은 몸부림이다. 눈 감을 때 까지 칼럼 쓸 생각을 한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뒤돌아 보지 않고 눈물 흘리지도 않는다. 놓쳐버린 날들을 안타까워 하지않고 되돌릴 수 없는 것들과는 후련하게 작별하라 이른다. 꽃이 피고 지듯 열림이 있으면 닫힘이 있다. 인생은, 닫힌 문도 열심히 두드리면 언젠가 열린다고 비밀번호를 가르쳐준다. 성실과 인내, 꿈이 패스워드다.

사는 게 힘들다고 불평 말고, 세상 잡사에 연연하지 말고,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냥 떠나 보내라고 가르친다. 눈 한번 깜박이는 사이 세월은 쏜쌀같이 달려간다. 후회와 뉘우침 대신 약속과 희망 붙잡고 새 날 새로운 세상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라 재촉한다. 노력한 만큼 못 건져도 절망 말고, 엉망진창 망쳐도 파토냈다 타인에게 손가락질 하지 말고, 반칙 안 했는데 날아온 옐로카드에 분노하지 않고, 약속은 사랑처럼 그냥 믿고.

인생에는 해고장이 없다. 죽고 사는 일 외에는 '짤리지' 않는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의 '봄길' 중에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만남과 작별은 같은 말이다. 너를 보낼 수 없는 나의 기막힌 사랑처럼, 보내도 너는 내 곁에 있다. 민들레 꽃씨 후후 불어 바람에 날리며 그대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 찬란하고 슬픈 봄을 당신 곁으로 보낸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