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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봄옷과 실

봄꽃을 가득 담은 원피스를 샀다. 화사한 꽃을 가득히 실은 원피스는 파스텔 톤의 구슬과 실로 엮여져 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른거리는 봄을 찾아 멀리 떠나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라도 새 계절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원피스 맨 윗 구슬 하나가 추락하자, 그 밑 구슬들이 줄줄이 떨어진다. 마치 나뭇잎 하나가 삶을 떨어뜨리자, 다른 잎들이 연이어 생을 마감하는 것과 같다.

옷을 둘러보며 벗겨진 뱀의 허물 같이 끊긴 실을 찾기 시작했다. 파기된 시신처럼 힘을 잃은 실들은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그것들은 울컥했던 감정이 세상과 부딪치다 생긴 열상 같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갈등을 팽팽히 버티다 절단된 모습인 듯도 싶었다. 밝은 빛 아래에 초라한 그림자처럼, 끊어지고 풀린 실들은 화려한 구슬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그 형색이 초라하다. 마치 격차 심한 현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도 싶다.

바늘에 실을 끼어 구슬을 달고 끊긴 실을 연결한다. 바늘과 실이 하나이듯 삶에서도 지어미와 지아비가 인생을 바느질하려면 하나의 영혼이 되어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리라. 바라기는 바늘 가는데 실이 가듯, 삶에서도 깊은 절망과 희망이 한 몸이었으면 좋겠다.

봄이 담긴 원피스를 수선한다. 부러진 줄기를 세우고, 흩어진 분홍 꽃잎들을 모아 다시 꽃을 피우며 옷 위에 새겨진 꿈을 재생시켜 간다. 전선 줄 같은 실은 구슬마다 삶을 넣었는지, 원피스의 전신은 반딧불을 켠 듯 환해진다. 구슬을 긴 실로 수놓는 것처럼, 인생은 제한된 세월 속에서 한없는 꿈을 수 놓다가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슬과 실은 무슨 인연으로 서로 의지하며 세상에 얼굴을 내보이고 있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처럼 그것들은 우연 같은 필연으로 삶 속에서 만난 것 같다.

윗실을 잡아당기면 밑의 실이 팽팽히 당겨지듯, 원인인 '인'과 결과의 '연'이 이어지며 만들어진 인연. 인연의 뜻은 서로 연결이며, 緣은 원래 '줄'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나 미래 그리고 가슴과 가슴을 이은 보이지 않는 실은 세상이 말하는 인연인지도 모른다. 반짝이는 구슬을 물고 있는 드레스의 실처럼, 삶이란 인연이라는 묘한 매력에 매료되어 인생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삶의 실은 거미줄의 그물처럼 수많은 인연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일 듯싶다. 그것은 사람마다 구축해놓은 인간관계의 나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보면 온 세상은 '실'로 이어진 것 같다. 세간을 움직이는 '보이는 실'과 '보이지 않는 실'. 사람들은 보이는 실에만 신경을 쓰지만, 실제의 세상은 보이지 않는 실로 활발하게 순환되고 있다. 어린 왕자가 말했듯이 삶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봄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오늘, 한 땀 한 땀 수놓은 삶의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서 인생을 성찰해본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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