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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2년…'볼디 사나이' 추모

볼디 800회 등반 고 김석두씨
산악잡지 '백패커' 심층 보도

산악전문지 백패커 5~6월호에 실린 산악인 고 김석두씨의 기사 내용이다. 김씨가 가족과 함께, 지인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백패커]

산악전문지 백패커 5~6월호에 실린 산악인 고 김석두씨의 기사 내용이다. 김씨가 가족과 함께, 지인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백패커]

마운트 볼디의 사나이, 고 김석두씨가 숨진 지 2년이 지났다. 그는 10064피트 마운트 볼디를 800회 이상 오르다 팔순 생일을 앞둔 2017년 4월 11일 산에서 숨졌다. <본지 2017년 4월 14일 a-3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최근 유명 산악전문지 백패커(Backpacker)가 5~6월호에 '한 남자와 그의 산(A man and His M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김씨의 생애를 기리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8쪽짜리 글을 게재했다. 그의 아들 김동영(51) 박사(위장내과의)가 인터뷰했다.

고 김석두씨는 1981년 43세 나이에 미국 땅을 밟았다. 당시 서울신탁은행에서 일하던 베테랑 매니저로 미국 지사로 파견을 나왔던 것이다. 그는 네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그 뒤 주재원 기간이 끝난 뒤에도 미국에 머무르기로 결심하고 일을 그만둔 뒤 1988년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는 LA 한인타운 버몬트 불러바드와 베니스 불러바드에서 주유소와 편의점을 열었다. 당시만해도 LA에서도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하지만 부부는 하루 15시간, 일주일 내내 일을 했다. 그렇게 9년을 일만 했다. 때때로 총을 든 강도가 침입해 위협하기도 했다. 1992년 LA 폭동도 겪어야 했다.



그는 의지할 곳을 찾다 아내와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50대 나이에 세례를 받고 평성직자 대표로 일했다. 일요일날은 편의점을 운영하기 위해 아내와 돌아가며 미사에 참석했다.

사업은 잘 됐다. 다만 쉬지 않고 10여년 동안 일한 것이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일상의 긴장감과 각종 사건 사고 등이 인계점을 넘었다. 부부는 결국 편의점을 팔고 버뱅크에 선물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에게는 지루한 일이었다. 석두씨는 하이킹을 꿈꾸기 시작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산을 오르던 석두씨는 69세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일흔이 다된 나이에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강한 힘과 폐활량만큼이나 강한 정신력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려 왔던 시간. 이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그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해답을 찾기 위해 성당이 아닌 산을 올랐다.

아들 동영씨는 "아버지는 아주 영적인 사람이었다"며 "아버지는 교회보다 산에서 신의 영혼을 더 느낀다고 말했다"고 인터뷰했다.

석두씨는 2000년에 처음 마운트 볼디 정상에 올랐고 그 길로 사랑에 빠졌다.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을 좋아했다. 시간이 있으면 그 길을 걸었고 그곳이 집이 됐다.

아들은 "아버지는 볼디 정상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 했었다"며 "어느날 아버지는 자신이 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산을 통해 보여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석두씨는 정상에 오르면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다. 하이커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물과 먹을거리를 나눠줬다. 태극기와 성조기, 한반도기를 들고 타인종 하이커들과 사진을 찍었다.

2016년 LA타임스는 "마운트 볼디를 오른다고? 그러면 아마 78세 산악인 샘(김석두)을 만나게 될거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지역방송 KTLA에서도 기사화했다. 2016년 말쯤 석두씨는 마운트 볼디를 750번 이상 올랐다.

볼디의 사나이, 석두씨는 2년 전 4월 7일 혼자 산을 오른 뒤 나흘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는 가파르고 돌이 많은 곳에서 쓰러져 있었다. 눈과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길을 내려오다 변을 당한 것이다. 그는 영원한 산 사람이 됐다.

아들 동영씨는 그 이후로 마운트 볼디를 9번 이상 올랐다. 매년 파더스데이에 오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묘지에 아버지가 묻혀 계신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아버지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나는 마운트 볼디에 오르면 아버지를 느낀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남기셨다."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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