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65.0°

2019.06.19(Wed)

[독자 마당] '슬픈 5월' 어머니 생각

정현숙 / LA
정현숙 / LA 

[LA중앙일보] 발행 2019/05/03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05/02 21:05

5월이 오면 나는 어머니게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려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올해로 20년.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은 변함이 없다.

책장 속에는 어머니에 대해 쓴 책들이 여러 권 눈에 띈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모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어머니를 제목으로 한 소설도 여러 권 있다. 아마도 어머니가 생각날 때 그런 책들을 샀었나 보다.

6·25 때 어머니는 34살의 새파란 새댁이셨다. 19살에 결혼해서 그 무섭던 전쟁을 혼자서 어린 5남매를 끌고 다니며 견뎌내셨을 생각을 하니 너무도 젊은 나이에 용감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아버지는 경찰관이셨기 때문에 함께 피란을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수복이 될 때까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음에 만약 또 피란을 가게 되면 당신하고 꼭 같이 가야 한다"고 원망 섞인 말씀을 아버지께 하셨다고 한다. 혼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으면 그러셨을까. 모두가 힘들고 어렵던 시절, 어머니는 6남매가 된 자녀를 키우기 위해 언제 일어나고 언제 주무셨는지 모를 정도로 부지런히 사셨던 분이다.

6명의 자녀가 다 성장해 1970년대 초 셋째, 그 후 넷째 두 딸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갔다. 지금처럼 전화 통화도 쉽지 않은 시절, 자나깨나 두 딸 걱정하시다 몇 년 후 어머니도 딸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셨다. 그러고 나니 한국에 남아있는 4명의 자녀가 또 걱정이셨나 보다. 가끔 보내주시는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어머니의 걱정과 사랑이 계속 전달되었다.

1987년 4남매도 모두 미국에 들어왔고 다시 만난 부모님과 모두 이웃해서 함께 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리 곁에 오래 오래 살아계시리라 믿었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1999년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 난 나의 두 딸이 함께 아이를 낳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해 주느라 정신이 없어 병원에를 가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날, "에미야, 너무 힘들구나"라는 말씀에 난 내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의 고통은 생각지 못하고 "괜찮으실 거에요, 퇴원하시면 찾아뵐게요"라고 한 전화 통화가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날 왜 좀 더 어머니의 고통을 보듬어 드리지 못했을까. 왜 자상하고 부드럽게 말씀 드리지 못했을까. 왜 내 힘든 생각만 했을까.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어머니와의 마지막 내 말이 왜 이리 가슴을 저려오게 하는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때 태어난 어머니의 증손자가 벌써 20살이 되었고, 내 나이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의 나이와 가까워지는 지금 나는 어머니가 너무 그립다. "에미야, 너도 힘들었겠구나"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 사진 속에서 미소짓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또 본다.

"엄마, 힘드실 때 찾아가서 손잡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엄마 정말 사랑해요. 아주 많이요." 엄마라고 불러보며 그때 해드리지 못한 말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해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픈 5월이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 어머니…."

관련기사 독자마당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

핫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