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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5월의 쇼팽을 들으며

음악가가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대답은 둘인데, 하나는 그래픽 디자이너, 나머지는 건축가이다. 디자이너가 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곡선이 아닌 자를 사용해 직선으로 구성하는 것에는 재미를 느꼈다. 회화 같은 순수 미술 분야는 식견이 턱없이 부족했던 반면, 로고나 글꼴, 단순하게 디자인된 포스터 같은 것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 공간 구성과 배치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측면 때문인지 건축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건축가가 되려면 건물의 하중을 산정한다거나 중요한 계산이 필수라는 생각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건축가 지인에게 손사래를 치며 이 이야기를 했더니, 건축가들은 디자인만 하지, 그런 복잡한 계산은 관련 전문가들이 해결한다며 건축 공부해보지 그랬냐고 말한다. 아뿔싸!

중고 서점에 들르면 희귀 악보가 들어와 있는가를 확인하는 편이다. 그 다음, 건축과 디자인 관련 서적을 들춰보는데, 이때 감춰진 예술적 호기심을 소비한다.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사진으로 만나고 언젠가 꼭 찾아가 두 눈으로 확인해보리라 결심을 하곤 한다. 길을 가다가도 고풍스러운 성당에 들어가 보는 것을 좋아하고, 처음 가는 지역은 이름 있는 건축물을 찾아 방문하는 편이다.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가는 건축가 승효상이 출연했던 한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리고 비틀스나 찰리 채플린 등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혔다. 승효상이 표현했듯이 그는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불세출의 건축가로 평가된다. 르 코르뷔지에의 혁명성은 샤보아 빌라의 건축 양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사용하여 건물을 땅에서 분리시키는 건축 양식을 처음으로 구현했다. 그는 1953년 완성한 롱샹교회를 통해서 주변과 동화되는 건축물이야말로 인간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이로운 건축이라고 말했다. 좋은 어울림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람들의 시선만을 잡아 끄는 건축은 폭력과 같다고 말하는 승효상의 주장과 맥이 닿는다.

최근 그가 완성한 건축물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경북 경산 하양읍에 위치한 하양무학로교회. 신도 수가 30명이다 보니 크기도 15평에 불과하단다. 3년 전 건축을 계획하던 교회가 가진 예산은 7천만 원에 불과했다. 설립 30주년을 맞은 하양무학로교회를 위해 승효상은 무료로 설계에 나섰고, 대구의 한 벽돌공장에서는 벽돌 10만 장을 선물했다. 건축 비용으로 지역 주민은 물론 인근 사찰에서도 300만 원을 기부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교회는 건축가의 자연 미학을 닮았고, 르 코르뷔지에의 철학을 그대로 관통한다. 시골 작은 마을에 겸손하게 세워진 벽돌 건물 꼭대기에는 그 흔한 십자가도 걸리지 않았다. 가장 교회다운 교회는 부대시설이나 편의시설이 많은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마주하는 본질적인 역할을 남겨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음악가들은 완벽해지기 위해, 그리고 더 음악적이고, 더 감동적이기 위해 쉼 없이 탐구한다. 그 예술혼 자체만으로 칭송 받기에 마땅하다. 반면 본질에 충실한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음악가들은 얼마나 될까. 르 코르뷔지에는 근대 건축의 판도를 뒤집어 놓은 혁명가이자 게임 체인저였지만, 그렇다고 오랜 세월을 거쳐 경작된 경관을 무시하는 폭압적이고 독불장군식의 건축물을 올리지 않았다. 악곡을 이루는 수많은 음들과 겸손하게 어울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시작된다. 5월의 첫 주말, 하양에 오롯이 내려앉은 무학로교회처럼 주변과 목소리를 맞춰 잔잔한 화음을 이루는 쇼팽의 평온함 위로 마음을 열어본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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