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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급성골수성백혈병 극복한 정지연씨 "골수기증은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입니다"

[샌디에이고 중앙일보] 발행 2019/05/04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05/03 20:33

2년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받아
생사 갈림길서 한인주부 기증자 만나
새 생명 찾은 후 골수등록 홍보 나서
한인들의 적극적인 기증 간절히 소망

골수 이식으로 새생명을 얻은 정지연씨(44ㆍ사진)의 특별기고를 게재한다.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는 필자는 2017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죽음 앞에 섰다가 그해 10월 일치된 기증자의 골수를 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정지연씨는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글로 담아내면서 자신에게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골수기증등록 운동이 한인사회에서 더 크게 펼쳐 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편집자 주>

2017년 1월 25일,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주치의한테서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아서 언제든 쓰러질 수 있으니 당장 응급실에 가서 수혈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일상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피검사를 한 상태였습니다. “어쩐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더라니… 빈혈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별 걱정 없이 병원 응급실로 가서 수혈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걸리는 거라고 생각했던 혈액 암이 가족력도 없는 건강한 장수집안에 속한 저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은 정말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위험 앞에 서니,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 아이가 엄마 없이 자라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해주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은데….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너무나도 살고 싶어서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충실했습니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암 병동을 열심히 걸었습니다.

바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급성 백혈병은 악성 백혈구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단기간에 말기로 발전되기 때문에 바로 항암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항암치료는 몇 달에 걸쳐서 강력한 약물을 투여해 관해(암세포가 찾아볼 수 없게 줄어든 상태, remission)를 유도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백혈병은 다른 암과는 달리 전이가 아닌 감염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항암 후 면역력이 아주 약해지기 때문에 무균 시설에서 치료를 받으며 방문객을 많이 만날 수도 없고, 음식을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도 위험했습니다. 먹는 음식도 실온에 3시간 이상 둘 수가 없고, 바로 해서 먹거나 아니면 얼려야 하고, 그릇도 다른 사람과 따로 써야 합니다.

항암으로 인한 부작용과 까다로운 치료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골수이식을 해야 한다는 무거운 소식이었습니다. 골수이식은 우선 일치하는 골수 찾기가 쉽지 않고 부작용도 워낙 다양하며 골수이식을 한 환자들의 힘든 경험담들이 제 마음을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기대했던 친정오빠의 골수가 절반밖에 일치하지 않는 결과도 우울함을 더했습니다. 골수기증 등록원 (Bone Marrow Registry)을 통해서 조직이 일치하는 기증 등록자가 전 세계적으로 9명이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 9명의 상황을 파악해 보니, 그 중에 건강상태나 나이제한 혹은 기증 거부 등으로 실제 기증을 해 줄 수 있는 후보자는 단 한 명 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골수이식 준비를 위해 코디네이터를 만난 후 두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골수이식 준비와 부작용 등의 정보를 받으면서 골수이식 후 한달 동안 의식을 잃은 환자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습니다. 골수이식 후 세달 동안 응급상황을 대비해서 보호자가 24시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절히 기도하던 중, 단 한 명 남은 기증 후보자의 정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보자는 기증 의사가 아주 확실하고, 저와 조직이 일치할 뿐 아니라 혈액형이 같으며, 골수이식 후 부작용의 큰 원인 중 하나인 거대세포바이러스 (CMV)도 저와 같은 양성이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의 젊은 엄마라는 것이었습니다. 골수이식 부작용을 줄이려면 같은 인종의 골수를 받는 것도 중요한 요소인데, 저에게는 너무나 완벽한 기증자였습니다. 저를 괴롭혀 왔던 막연한 두려움은 안도와 감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조직이 일치할 확률은 이 만분의 일(1/20,000) 이라고 합니다. 하물며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이런 의지와 조건을 갖춘 한국인 기증자를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 기증자가 일면식도 없는 저를 살리기 위해서 어린 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골수 기증을 해 준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골수이식 일년 후,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 기증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되었는데 좋은 양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고18살 때 교회에서 하는 골수기증 등록운동을 통해 기증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골수 기증 연락이 왔을 때, 3개월 전 큰 교통사고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코마 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기꺼이 골수 기증을 했고 이제까지 저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제게 골수이식을 한 후, 얼마 안돼 셋째를 임신했고 그 아기가 7개월이라는 기쁜 소식도 받았습니다.

저는 2017년 10월 20일에 골수이식을 받고 지금까지 큰 부작용 없이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좋은 골수는 환자의 생명을 살릴 뿐만 아니라 회복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보통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 속에 뛰어들어 익사 위험의 사람을 구하거나, 수술을 통해 장기를 기증 하는 등의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골수기증은 그런 위험 부담이 없이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귀한 일입니다. 제 기증자가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70대 노부부의 귀한 딸인 저를 살렸듯이 말입니다.

골수 이식은 좀 더 정확하게는 조혈모세포 (blood stem cell) 이식입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더 이상 골반에서 골수를 채취하는 경우는 드물고 공여자의 말초혈액에서 조혈모세포만을 채취해 이식에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수일간의 전처리 과정을 거친 후에, 기증 당일 날에 헌혈과 같은 방법을 통해 말초혈액 속에 있는 조혈모세포만을 채취하고 나머지 혈액은 다시 기증자에게 넣어주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Be The Match’ 웹사이트(http://bethematch.org) 에서 골수 기증 과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온라인으로 기증 등록 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등록을 하면 조직 적합성 검사를 위해 입 안을 문지르는 키트(cheek swab kit)가 옵니다. 그 키트로 입안을 문지른 후, 다시 Be The Match 로 보내면 등록이 됩니다. 저희 아이들도 골수 기증의 자격이 되는 18세가 되는대로 바로 골수 기증등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도 간절하게 골수를 찾고 있는 소식들을 접하곤 합니다. 생명을 빚진 자로서 저의 바램은 지역 한인회, 종교단체, 대학모임 등 다양한 한인 커뮤니티가 골수 기증 등록에 참여 하고 이를 독려해 주셔서 더 많은 혈액암 환우 분들이 저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며 완치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 지연 (주부, 샌디에이고 소렌토밸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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