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열린 광장] 장군의 편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와 발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밴 플리트' 장군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미 8군 사령관으로 참전했다.

당시 그의 아들 '지미 플리트'도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 땅을 밟았다. 지미 대위는 북한 상공에서 작전임무를 수행하다 그의 전투기는 적의 대공포에 의해 격추되었다.

실종된 조종사에 대한 수색작전이 전개되었지만 적지에서의 수색이 난항을 겪자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은 수색 중지 명령을 내렸다. 수색이 더 큰 인명 피해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그는 고국에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 아들 지미는 자신의 임무를 만족해 하며 떠났고, 부디 당신도 의연하게 이 슬픔을 견뎌내 주기 바라오." 그 후 중공군 남하를 막아 방어선을 지키는 데 성공했으며 휴전시까지 현 전선을 유지하였다. 무엇보다도 1951년 대한민국 국군에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를 세워 자립 강군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우리 육군의 은인이다.



요즘 군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전역식도 못하고 군을 떠났던 박찬주 예비역 육군대장(전 육군 제2작전 사령관)이 지난달 30일 육군 후배들에게 뒤늦은 전역 인사를 했다. 그는 이른바 '공관병 갑질 의혹' 논란에 휩싸인 뒤 수뢰 혐의로 한때 구속됐다가 지난 4월26일 항소심에서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군복을 벗었다.

박 전 대장은 전역사에서 "지난 40년간 저에게는 지켜야 할 조국이 있고, 생사를 함께할 전우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늘 힘의 원천이자 행복의 근원이었다"고 했다. 독일 육사 유학파 출신 엘리트 사관생도로 일찍이 저 유명한 독일 지상군의 맹호인 기갑 전차를 익힌 전차 작전의 전문가요, 지장으로 최고 작전 지휘관의 이름을 낸 장군이다.

그는 "군은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정권은 우리 군을 대신하여 나라를 지켜 줄 수 없다"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평화를 외칠 때, 오히려 전쟁의 그림자가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각오를 가져야 하고, 평화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몫이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대의 몫이라며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북은 핵을 포기할 뜻이 없는데 우리는 남북 군사합의라며 우리 발을 스스로 묶었다고 탄식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굳건하게 국가 방위 태세를 유지하여 국가의 생존과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 군이라면서 군대의 매력은 편하게 지내다 올 수 있는 군대가 아니라, 비록 힘들지만 땀의 가치를 알고 승리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군대이어야 한다고 외쳤다. 즉 군대는 국민에게는 든든함을, 장병에게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적에게는 두려움을, 동맹군에게는 신뢰감을 주어야 할 것이란 말에 힘을 주었다.

박 전 대장은 조국이 결코 그의 충성심을 버리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군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만은 잃지 않았다.

사랑하는 전우들을 남겨두고 쓸쓸히 홀로 떠나는 그에겐 예포도, 의장대 사열도 없이 심금을 울리는 전역사가 전부였다. 바로 국민께 국군이 드리는 애국충정의 편지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