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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작별을 준비하며

작별은 찬연하다. 마지막 인사, 마지막 선물, 마지막 장면, 마지막 키스, 마지막 대사, 마지막 계절, 마지막 잎새 등 '마지막'이 붙은 단어들은 가슴 저린 연민으로 다가온다.

초롱초롱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꿈 펼치며 미국땅을 밟은 지도 어언 40년. 나는 '내일'이란 말 대신에 '희망'이란 단어를 새겼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본 중서부의 대 평원은 넓고도 광활했다.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캔버스에 그려진 듯 울창한 수목 사이로 여우 꼬리처럼 가는 길들이 여러 갈래로 펼쳐져 있었다. 평등과 자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 희망이 살아숨쉬는, 남의 땅 남의 나라에 낯선 얼굴 서툰 언어로 새 삶을 시작했다.

모르면 두려움이 없다. 알면 병이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을 때는 정말 행복했다. 피부색으로 나뉜 평등 뒤에 숨은 차별과 맞서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지불해야 하는지. 희망은 있는 사람 만이 꿈꿀 수 있는 가진 자의 선택이란 것을 알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깨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다시 일으켜 세우며 창작센터와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했다.

청춘과 장년을 아낌없이 불사르며 중서부 대평원에 인생의 반을 뭍었다. 유대인이 장악한 세계미술시장에 생머리 뒤로 묶고 유일하게 활동하는 동양여자, 한국이름 이기희로 살아남기까지 무릎 깨져도 울지않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에 이판사판 목숨 걸었다. 운명의 여신은 잔인하고 공평하다. 자만으로 넘치지 않도록 고통에 빠트리고 절망으로 생을 끝맺지 않게 저울 추를 조정한다. 오하이오에서 식도암으로 리사 아빠를 잃고, 장애아인 리사의 풀잎 같은 생명을 지켜내고 어머니를 떠나 보냈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끝이 있다. 내 평생 소원이 샌디에이고 라호야 비치에 화실 열고 태평양 건너 조국 바라보며 크루아상으로 아침 먹고, 바닷바람에 머리 휘날리며 그리운 사람 그리워 하는 것. 그러다 보면 한 맺힌 모국어로 장편 두 편 쓸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부터 이사 갈 준비를 했는데 드디어 화랑 건물 2동이 팔렸다. 삼진 아웃, 이제 집만 팔리면 미련 접고 떠날 준비를 한다.

오하이오의 봄은 고혹적이다. 초록이 너무 아름다워 눈이 시려 눈물이 맺힌다. '너 떠나는 날에/ 숲에는 하루 저물도록/ 비가 내렸네/ 길 떠난 사람 / 빗방울 헤며 / 흐르는 강물 뒤돌아보았을까/ 안개 속으로 산이/ 산을 떠날 때/ 숲은 질푸른 슬픔을 안고 (중략)/ 밑동까지 젖어버린 사랑이 있었네.- 서경요의 '작별' 중에서

우리는 매일 이별 하며 산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난다. 마지막이 될 찬란한 오하이오의 봄을 가슴에 접어넣고 떠날 채비를 한다. 봄은 내 눈 속에 있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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