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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버릴 사 셋, 취할 사 하나

"우둔한 자의 입은 그를 파멸시키고 입술은 그를 옭아맨다." "난(亂)이 생기는 데는 곧 말로써 계단을 이룬다." 앞의 것은 '구약성서' 잠언이 이르는 말이고, 뒷것은 '주역'에서 푸는 말이다. 모두 입조심,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경계다. 입이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가 거꾸로 잡고 쏘는 화살임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이 진리인 것이다.

성서나 주역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구는 수없이 많다. 사람이 입과 혀를 다스리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말을 직업을 삼는 정치인들은 더욱 그렇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는 스스로 뱉은 말을 주워담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나는 처음 듣는 단어였는데, 어떻게 알게됐는지 지지자들을 향해 옮겼다가 사달이 났다. "어디서 유래한 건지 몰랐다"는 그의 해명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험하고 천박한 말을 점잖은 입에 담을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면피가 안되니 문제인 거다. 신뢰가 생명인 정치인이 뜻도 모르는 말을 한다는 건, 그가 지금까지 한 말들의 기초를 뒤흔드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말 잘하는 국무총리 역시 SNS에 한마디 훈시를 하려다 스텝이 꼬이고 말았다. 방송기자한테 말하면서 왜 신문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방향이 틀렸다. "새롭게 듣는 건(新聞)" 독자 얘기지 기자 얘기가 아니다. 독자에게 새로운 걸 들려주려면 기자는 열심히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잘 물으려면 잘 듣는 게 우선일 순 있다. 하지만 상대가 엉뚱한 얘기를 하면 말을 끊고서라고 제대로 된 대답을 이끌어내야 하는 게 기자다. 설령 그 상대가 대통령이라도 말이다.

이미 지난 일을, 그리고 그저 해프닝일 수도 있는 것을 비난하고자 다시 꺼내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해프닝에 따라 붙는 또 다른 거칠고 험한 말들의 향연과 그것이 증폭시킬 이 사회의 갈등과 증오, 그리고 그런 증오와 갈등에 가리워 손가락만 볼 뿐 달을 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두려운 까닭이다.



평생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헌신한 영국 국교회 성직자 윌리엄 템플은 울림이 있는 좋은 말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진실이 담겨야 하고, 둘째 양식(良識)을 갖춰야 하며, 셋째 세상에 대한 걱정에서 나와야 하고,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할 기회를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는 있지만, 처음 세 가지는 노력만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세가지 사를 버리고 한가지 사를 취한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진실이 아닌 건(詐) 말하지 말고, 건전한 양식에서 벗어나는 것(邪)도 말하지 말며, 자기 걱정(私)을 세상 걱정인양 말하지 말고, 적절한 때를 기다려(俟) 말하란 말이다. 말하기 전에 이것만 생각해도 바다 건너 일본의 집권 자민당처럼 '실언 방지 매뉴얼'을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매뉴얼이 있다고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건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유대인 율법서 '토라'가 들려주는 충고가 차라리 현실적일 수 있겠다. 자신의 이익은 결코 버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틀이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실언과 폭언, 허언으로 인한 갈등과 증오로 골병 드는 사회를 살리는 건 생각지 않아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것만은 기억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말을 자기가 건너는 다리라고 생각하라. 단단한 다리가 아니면 당신은 건너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훈범 / 한국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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