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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공장 개조…통조림의 역사 한자리에

[LA중앙일보] 발행 2019/05/22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2019/05/21 19:27

오리건 핸손 통조림 박물관

2003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1875년부터 20세기 후반에 걸쳐 근무한 수천 명의 직원들의 작업을 기념하기 위해 범블 비 회사와 전직 근로자들이 설립했다. 통조림 공장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2003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1875년부터 20세기 후반에 걸쳐 근무한 수천 명의 직원들의 작업을 기념하기 위해 범블 비 회사와 전직 근로자들이 설립했다. 통조림 공장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여섯살 즈음이었다. 흐릿한 어린 기억에 손님들도 있었고 집안이 시끌벅적했었다. 집 마당 한구석에서 닭잡는 것을 목격했다.

60년대 초에는 마당이 있는 도시 가정집에서 닭을 잡아 요리를 하기도 했다. 닭국이 끓여졌고 누군가의 그릇에 닭머리가 있었다. 그 충격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이후로 닭고기를 못먹게 되었다. 나의 악몽은 닭에 관련된 꿈일 정도로 충격적 사건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영양식이었던 70년대의 전기구이 통닭, 여름철 삼계탕,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국식 양념닭은 언감생심이었다.



#재작년 펜실베이니아주 랭캐스터(Lancaster)를 여행했다. 이곳은 더치 카운티(Pennsylvania Dutch County)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아미시(Amish)들이 현대 기술과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나름대로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아미시들은 자급자족 농업생활을 하며 집집마다 식량으로 사용할 소, 돼지, 양, 오리, 거위, 닭 등의 가축들을 넓은 마당 한울타리에 풀어 기른다. 보기에는 낭만적이지만 이 동물들을 필요에 따라 직접 도살한다.

내가 머물렀던 랭커스터 캠핑장 촘촘한 철조망 울타리 건너에 아미시 농장집이 있었다. 농장 안에는 농사에 동원되는 큰말들이 풀을 뜯으며 농한기를 즐기고 있었고 여느 아미시 농가처럼 닭도 놓아 길렀다.

어느날 내 RV차 뒤로 닭들이 모여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멀리서 조용히 동태를 살피니 중병아리가 캠핑장으로 넘어왔다 되돌아가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울타리 건너에 10여 마리의 닭무리가 걱정을 얹은 구구소리를 내며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애를 태우던 중병아리가 마침내 구멍을 찾아 넘어가자 닭무리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우리가 매일 먹다시피하는 한국식 양념닭들도 살아서는 꽤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물인 것을 새삼 느꼈다.

박물관에는 이 공장에서 사용되던 오래된 통조림 가공기계, 통조림 가공 전 참치를 저장했던 냉동실과 참치, 연어를 낚던 배와 장비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이 공장에서 사용되던 오래된 통조림 가공기계, 통조림 가공 전 참치를 저장했던 냉동실과 참치, 연어를 낚던 배와 장비들을 전시하고 있다.

오리건주 아스토리아시 동쪽 39부두에 있는 범블 비 핸손 통조림 박물관. 1875년부터 생선 통조림을 생산하던 오래된 가공 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

오리건주 아스토리아시 동쪽 39부두에 있는 범블 비 핸손 통조림 박물관. 1875년부터 생선 통조림을 생산하던 오래된 가공 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육식 애호가였다. 지난 여름 워싱턴주 대형마트에서 한국식 삼겹살을 발견했다. 한국음식이 그리운 탓에 기회만 있으면 삼겹살을 구해다 캠핑 화덕에 불을 피워 숯불구이를 했다. 불을 피우고 먼바다를 바라보며 아끼던 소주를 곁들인 삼겹살구이 시식은 천상의 행위였다.

그러다 어느날 왠지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같은 동물들의 선한 눈을 바라봤다. 과학자들은 포유류와 조류가 복잡한 감각과 감정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소, 돼지, 닭 등 동물들도 육체적 통증을 느끼는 것은 물론, 정서적 고통도 느낀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우유나 치즈, 계란은 먹지만 육식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여행을 하면서 한식을 고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한국식 생선구이나 생선찌개를 먹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 시골 마켓에는 아예 생선을 팔지 않는 곳도 많고 코리아타운 아니면 고등어, 꽁치, 삼치 같은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생선을 구할 수 없다.

#어항이 있는 바닷가 마을은 물론 미국 마켓 생선전 생선은 한정되어있고 그마저도 포를 뜬 살점만 판다. 궁여지책으로 통조림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질 좋은 생선 통조림이 있으면 사다 재어 놓는다.

오리건주 태평양과 컬럼비아강 하구가 접한 아스토리아시는 예전부터 유명한 어항이었다. 연어를 비롯한 생선의 어획량이 많은 곳으로 북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어업을 하며 일군 도시였다.

1899년에는 이 지역 어부들이 범블 비 해산물(Bumble Bee Seafoods) 회사를 만들어 참치, 연어, 정어리 등의 생선 통조림을 생산했다. 이 회사는 현재 북미에서 가장 큰 통조림 회사가 됐다.

아스토리아시 동쪽 39부두(Pier 39)에서 1875년부터 생선 통조림을 생산하던 오래된 통조림 가공 공장을 개조한 핸손 통조림 박물관(Hanthorn Cannery Museum)이 있어 관람했다.

이 박물관은 범블 비 통조림 회사와 전직 근로자들이 설립했다. 무료로 운영되는 박물관에는 오래된 통조림 가공기계, 통조림 가공전 참치를 저장했던 냉동실과 참치와 연어를 낚던 배와 장비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생선 통조림 산업과 노동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오리건주 역사의 현장이었다.

#얼마전 제2의 고향 LA를 방문해 지인들을 만났다. 육식을 안한다는 말에 모두 의아해 했지만 생선집으로 데려 가는 배려를 받았다. 폐를 끼치는 행동이 아닌가 자책도 해봤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고기맛을 알면서 참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식생활이 무척 불편하지만 육식을 포기하면서 지능이 있고 육체적, 정서적 고통을 느끼는 동물을 먹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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