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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협상 돌연 결렬 뒤엔···시진핑의 '빨간펜 난도질'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5/22 09:35

[박현영의 글로벌 인사이트]
미·중 무역협상 결렬 배경
트럼프, 금리 내리라 Fed 압박에
시진핑, 무역합의 간절할 것 오판
당 지도부 뒤늦게 반대 가능성도
“두 정상 개인 케미로 균열 메워야”

결실을 볼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딜’로 끝난 뒤 ‘장외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겨냥한 제재를 잇달아 내놓았고, 중국에서는 반미 감정이 고조되는 등 미·중 갈등이 총력전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협상 결렬 직후 양국은 일부 합의 내용에 대해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같은 견해차가 왜 협상 막판에 불거졌는지는 곧바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미·중 언론에서 협상 결렬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를 토대로 순조로운 듯 보였던 협상이 ‘노딜’로 끝나기까지 약 2주간을 재구성했다.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 미 무역대표부(USTR) 청사 앞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중국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D-14: 협상 타결 장밋빛 전망

지난 4월 말까지만 해도 무역전쟁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6일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외국인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외자 지분 소유와 독자 경영을 더 많이 허용하겠다”면서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무역협상에서 요구해 왔던 사항들이다.

미국도 협상의 결승선을 보는 듯했다. 미 무역협상단 대표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달 29일 “협상이 마지막 트랙 한 바퀴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미·중 관료들은 합의 발표가 임박했고, 합의문 서명식을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하느냐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리조트에서 하느냐를 논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D-9: ‘빨간펜’ 첨삭된 중국 수정안

시 주석의 연설 뒤 며칠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무역협상단은 기존 합의문 초안에서 상당 부분을 수정한 문서를 미국 측에 보내왔다고 NYT는 전했다. 이때가 5월 1일이었다. 첨삭과 수정 사항이 잔뜩 반영된 합의안이었다.

중국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존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고문은 “베이징에서 온 수정 합의안은 온통 ‘붉은 바다(Sea of Red)’였다”고 말했다. 중국 협상단 대표인 류허 부총리가 미국 측과 수개월에 걸쳐 작성한 합의문 초안에 대해 시 주석이 상당 부분 재구성을 요구했다는 것이 익명 소식통의 전언이다.

수전 손튼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SCMP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에 건낸 문서가 디테일이 모두 삭제된채 돌아왔다”고 말했다.




협상을 마치고 나오며 손 흔드는 류허 중국 부총리. 합의는 없었지만 협상장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AP=연합뉴스]







D-5: 트럼프, 인내심 한계 드러내다

중국에서 ‘빨간펜’으로 도배된 수정안이 왔다는 보고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트위터를 보냈다. “중국과의 협상이 진행 중이긴 한데, 너무 느리다. 그들이 재협상을 시도하는데, 안 된다(No)!” 중국이 이미 합의한 내용에서 후퇴하려 한다며 비난했다. 또 트위터를 통해 5월 10일부터 중국산 제품 2000억 달러 규모에 대한 관세를 현재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D-3: 시진핑 ‘판 깨지는 건 막자’




트럼프(左), 시진핑(右)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에 대한 불만과 관세 인상 예고 트위터에 시 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는 부산해졌다고 WSJ은 전했다. 불과 이틀 뒤 워싱턴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무역협상에 중국 대표단이 참석할 것이냐가 쟁점이었다.

트럼프 트위터에 이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이 약속에서 후퇴했다”고 다시 압박하자 중국은 협상 참석을 결정했다. 성과에 대한 기대는 이미 내려놓은 상태였다. 한 관료는 WSJ에 “워싱턴 행은 협상을 이어가려는 목적뿐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측이 막판에 입장을 바꾼 배경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정치 체제에서 이렇게 늦은 시점에 합의안을 뒤집어엎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시 주석뿐일 것으로 추측한다고 NYT는 전했다. 그렇다면 시 주석은 왜 협상 막바지에 합의문 수정을 시도했을까.

NYT는 미·중 무역협상에 대해 잘 아는 전·현직 관료, 학자, 변호사, 무역전문가 등 10여명을 취재한 결과 “무역 합의에 대한 트럼프의 열의를 시진핑이 잘못 읽었고, 이에 따라 미국 협상팀을 어디까지 밀어붙여도 되는지를 잘못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 종식을 너무 간절히 바란 나머지 미국 협상단이 막판 수정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시 주석이 오판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미국 국내 정치 지형을 잘못 읽었을 수도 있다. 스캇 케네디 CSIS 선임고문은 “미국 증시 부양을 위해 트럼프가 무역 합의를 원한다는 인상을 받은 중국이 미국을 압박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합의에 급한 만큼 중국이 유리한 고지에 설 기회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WSJ도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난하면서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압박하자 중국 관료들은 미국 경제 둔화를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합의에 대한 간절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부양책 덕에 중국 경제는 안정적이라 판단한 중국 관료들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합의 내용의 중국법제화가 국가적 자존심에 모욕감을 줄 수 있다는 결론을 시 주석이 뒤늦게 내렸을 수도 있다. 또는 합의문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당 지도부의 우려를 시 주석이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공산당 지도부가 협상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을 그때그때 듣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보고를 받았을 수 있다는 전제다.

전문가들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중국의 정책 결정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을 것으로 분석한다. SCMP는 "극소수만 공유하던 무역합의 초안이 보다 광범위한 관료들에게 공개되면서, 일부에서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중국 지도부가 무역 합의문에 중국어 정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다가 이를 뒤늦게 알게 됐을 경우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 타오징저우 변호사는 NYT 인터뷰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협정을 공식 문서로 번역하면 서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D+12: 격렬해진 중국 내 반응

협상 결렬 직후 양측 대표단은 상대를 향한 자극적인 언사는 피했다. 10일 협상을 마친 뒤 류허 부총리는 강경 발언과 온건 발언 사이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중국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원칙적 문제는 양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협상이 무위로 끝난 데 대해서는 “양자 협상에서 흔히 있는 작은 문제들”이라고 일축했고 미래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긍정적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래리 커드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중국이 라이트하이저와 므누신을 초청해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양국은 거칠어지고 있다. 미·중 긴장 관계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왕용 베이징대 교수는 NYT에 “중국이 압박에 굴복하거나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면서 “여론이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타오징저우 변호사는 “다시 협상하기 위해선 매우 강력한 정치적 의사 결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중국 정부의) 프로파간다가 애국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협상의 여지를 더욱 좁힐 수 있다”고 말했다. 제시카 천 웨이스 코넬대 교수는 “중국 정부는 고비용 장기전을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체면을 세울만한 제안을 받으면 수락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상당 기간 협상은 지체될 것으로 보인다. CSIS의 존슨 선임고문은 “진지한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6개월에서 12월은 충분히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중국 언론의 전투적인 성명은 미국을 비난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비난은 피하고 있다. 시 주석도 무역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음 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두 정상이 만나는 일정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 WSJ은 “균열을 메우는 것은 이제 두 정상의 개인적 케미(궁합)와 의지에 달렸다”고 전했다.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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