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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불 들고 미국 온 부모님의 희생, 나를 밝은미래로 이끌었다”

심재훈 기자 shim.jaehoon@koreadaily.com
심재훈 기자 shim.jaehoon@koreadaily.com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5/23 14:23

미국 상무부가 주목한 인재, 한인1.5세 찰스 김 특허청 디렉터
서울서 태어나 4살 때 미국 이민 “부모님, 위험 감수하며 미지의 세계 도전”
“부모 희생 헛되지 않도록 성공 결심”“성공 원한다면 편안한 곳서 벗어나라”

미국 상무부가 ‘아시안 아메리칸 유산의 달’을 맞아 한인 1.5세 찰스 김 특허청 디렉터(39·사진)를 주목했다.
상무부는 찰스 김과 가족의 인생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찰스 김의 부인 김애본씨(37)는 “이민 1세와 1.5세대들에게 공감되는 내용이어서 중앙일보에 소식을 전했다”라며 “남편의 이야기가 널리 전파돼 더욱 많은 한인 차세대들이 특허청 고위직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상무부는 찰스 김이 특허법 전문가들을 지휘하며 연간 4만 건 넘는 특허 관련 서류를 처리, 미국 정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터뷰에서 찰스 김은 “우리 가족은 내가 4살 때 미국으로 왔다”며 “다른 아시안 이민자들처럼, 우리 부모님은 내게 더 밝은 미래를 열어주고자 노고와 인내, 희생의 삶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모님은 재정적 능력과 영어 구사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을 알고 계셨다”며 “자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과감하게 나아가는 것은 가치있는 도전이라고 판단하셨다”고 말했다.

미국에 온 김씨 가족이 처음 거주한 곳은 뉴욕 퀸즈다. 재산은 500달러와 한영사전이 전부였다. 김씨의 아버지 김기우씨(69)는 당시 동네 식료품점에서 일했다. 어머니 곽명환(64)씨는 의류제조회사에 다녔다. 김씨는 “부모님은 오랜시간 힘들게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종잣돈을 마련했다”며 “내가 10살 때 뉴저지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뉴저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럿거스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3학년 때 학교 복도에서 특허청 구인 공고를 봤고, 지원해 특허심사원이 됐다. 일하면서 조지워싱턴대학 로스쿨에 다녔다. 졸업 뒤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센터의 특허심사 간부로 선발됐다. 김씨는 “이런 기회를 잡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자신이 성공적인 경력을 쌓도록 동기부여 한 것은 ‘부모님의 희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의 밝은 미래를 위해 바친 부모님의 희생을 보며, 나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성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씨는 성공을 원한다면 편안한 곳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당신이 삶에서 편하게 여기는 구역, 안전지대를 원으로 그려보라”며 “당신을 그 원의 바깥쪽에 놓는다면, 그 원은 더욱 커질 것이고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찰스 김 디렉터는 현재 센터빌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유학온 김애본씨를 지인 소개로 만나 결혼, 딸 김예나양(8)과 아들 김민재군(6)을 낳았다. (가족사진) 김 디렉터의 부모님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김애본씨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항상 일하러 나가셔서 남편이 집에서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들었다”며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지원을 제대로 못해줬는데도 아들이 훌륭하게 성장했다’며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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