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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정치인의 역지사지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은 맹자의 이류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비릇된 말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는 의미다. 이야기의 시작은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와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는 후직(后稷)이 태평성대를 살면서 자기집 앞을 세 번씩 지나치면서 한 번도 들어가지 아니한 모습을 '어질다'고 하면서부터다.

이어 제자 안희가 난세에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도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선비정신을 잃지 않고 있음을 위의 두 사람과 묶어 역지즉 개연, 즉 옳은 사람은 처지나 환경에 따라 삶의 태도나 어짐의 현상이 다르게 나타났을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라는 말로, 우와 후직이 난세를 살았다면 안희처럼, 반대로 안희 또한 태평성대에는 우와 후직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역지사지로 읽히고 있다.

반면 삼국지의 배송편에는 역지사지를 너무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한 뒤 행동하다 목숨을 잃은 위인이 있다. 이야기는 조조가 한중에서 유비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지만 전황이 좋지않아 진퇴를 놓고 고민이 깊어진 데서 시작된다. 우울한 이날 저녁메뉴로 닭갈비(계륵.鷄肋)가 올라오고 조조가 멍하게 그릇에 담긴 계륵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하후돈이 들어와 그날 밤 작전암호를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하후돈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조조가 혼잣말로 "계륵, 계륵이다"라고 중얼댔고 조조의 뜻과는 달리 그날 밤 작전명은 계륵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후돈으로부터 조조가 작전명을 계륵으로 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장수 양수가 갑자기 짐을 꾸리는 것이 아닌가. 놀란 하후돈이 양수를 붙들고 "왜 갑자기 짐을 싸느냐, 야반도주라도 할 셈이냐"고 채근한다. 이 때 양수가 한 말이 재미있다. 자신이 조조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보니 계륵이라는 작전명이 의미심장하다. 반드시 조조는 오늘밤 군사를 물릴 셈으로 계륵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니 미리 짐을 싸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계륵이란 말이 좋아 갈비지, 먹기도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존재를 일컫는다. 머리 좋은 양수의 입장에서 진퇴양란의 갈림길에서 나온 계륵작전은 퇴각을 결심한 조조의 복잡한 속마음의 표출이라고 읽음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무튼 그날 밤 양수는 군의 사기를 동요시켰다는 죄목으로 목이 달아난다. 양수의 섬뜩할 정도의 역지사지가 조조에게 두려움으로 작동했는지 모른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몇 주째 전국을 돌며 민생대장정 중이다. 텃밭인 부산.대구 등에서는 호응도 있었지만 광주에서는 물벼락 세례를 받았고 5.18 기념식에서는 김정숙 여사가 악수를 패싱하였다고 한국당이 생떼를 쓰고 있다. 제주에서는 쌩쑈 하지 말라는 비아냥도 들었고 인천에서는 김정은 대변인 짓이란 표현으로 또 다른 막말시비를 낳고 있다.



황 대표 입장이 한중의 조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진격을 하자니 힘에 부치고 그렇다고 퇴각을 하기는 명분과 실리가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황 대표를 대하는 여권의 자세다. 청와대와 지금의 여당이 누구인가? 그야말로 아스팔트에서 잔뼈가 굵은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장외 집회에 이골이 난 그들은 황 대표의 속마음을 그대로 역지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절대로 호락호락 황 대표의 퇴로를 열어준다거나 영수회담 제의를 받아 거물 황교안이 되도록 힘을 보태지 않을 것이다. 먹어도 그만 버려도 아깝지 않는 영양가 없는 계륵 신세의 대장정을 과감히 버리고 후일을 도모함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민해보시기 바란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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