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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봄이사 가고나면 그만인 것을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LA중앙일보] 발행 2019/05/28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9/05/27 13:11

오-매! "꽃 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잇사의 하이쿠 '마음이 헤프지는 날')

에-라! 이참에 선언컨대, 그간 이 몸을 수고롭게 하거나 무거운 짐 지게 한 모든 중생은 무죄다.

봄이 점차 익어가면서 몸도 마음도 풀어져 들썩인다. 길 떠나고 싶어지는 날들이다.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엊그제 화들짝 피었던 매화며 복사꽃, 능금 꽃은 그새, 봄바람에 눈송이처럼 휘날리고, 산야를 물들인 진달래, 철쭉의 연분홍 꽃빛은 여태 고혹하다. 산자락을 따라 뭉게뭉게 피어오른 산 벚꽃들, 장끼는 까투리 앞에서 검붉은 볏을 한껏 세우고, 두견이 소리가 짝을 찾아 골짝을 맴돈다.

멀리 풋보리밭 위로 아지랑이 가물가물 흔들리는데, 건넛마을 춘심이가 부풀어 오른 춘정을 어쩌지 못해, 그만 사달이 났다는 염문은 쉬쉬하면서도 봄바람 타고 삽시에 번져나갔다.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리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 …."(김용택의 시 '찔레꽃' 중에서)

봄철엔 볕이 길어지고 쨍해진다. 살랑 불어 옷섶을 들치고 파고드는 봄바람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과학자들은 그에 더해 꽃의 만개와 향훈이 부추기며, 사람의 자율신경과 호르몬을 관장하는 기관을 자극해, 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한다.

성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진 사람은 이성적이 되기보다 감정적이며 격정적으로 되기 쉽다. 감정의 조절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다.

봄철의 성호르몬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봄이 되면 여성들의 몸과 마음이 더 풍요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져, 달뜨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신라시대(7세기께) 이 젊은 여승의 몸은 꽃피는 봄 산의 관능을 견딜 수 없었다. 대책 없는 생의 충동을 더는 감당할 수 없어 시 한 줄 던져놓고 끝내, 산문을 나선다.

"꽃 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설요의 '속세로 돌아온 노래')

스물한 살. 어느 시인의 첩이 된다. 오고 가는 봄을 따라 사바를 오고 가다, 객사한다.

그래서인가. 천재수필가 전혜린(1934년생)은, "봄은 나에게 취기의 계절, 광기의 계절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서른한 살. 자살한다. 불꽃처럼 살다간 영혼의 집시.

가는 봄, '아름다운 파멸이 천지간에 한창이다.'

어찌할거나? 모두가 거짓말이라는데, "모두가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달아나 버렸다"는데. (산토카)

아뿔싸! 세상 모두는 무상(無常)이어서, 봄이사 가고나면 그만인 것을!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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