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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미국 이름의 수난과 영광

한 때 차가 없어 카풀을 했다. 회장이 불쌍히 봐 새벽 6시에 우리 아파트 앞에 나와 있으면, 자기와 같이 출근하고 30분 일찍 도착하니 그 시간은 오버타임으로 돈도 준다고 했다. 회장이 링컨콘티넨털을 운전하고 나는 그 옆에 타서 출근하니 회사 직원들의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속한 과의 매니저는 50대 여성 루스(Ruth)였다. 말과 전화통화 등으로 당황한 적이 수없이 많았지만, 수련 3개월 후 정식 직원이 된 날 루스가 부르더니 직원들이 부르기 쉬운 미국 이름을 사무실 내에서 쓰면 어떠냐고 물어본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내 나라, 할아버지, 아버지, 고향 땅 등 복잡한 생각에 잠시 머뭇거렸더니, 생각해 보고 내일 이야기하잔다.

다음날 루스는 명찰을 하나 만들어 주며 달고 다니란다. 피터(Peter)였다. 새 이름을 하사받기는 했는데 사내 방송이나, 누가 "피터!"라고 부를 땐 그 이름이 나를 부르는 것으로 금방 알아듣지 못해 고생을 하면서 차츰 미국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한국말은 한 마디 할 사람도 없고, 이름도 바뀌고, 글도 한국말은 눈 닦고 봐도 안 보이는 삶이 됐다.

나는 개미 같은 존재로 이름도, 말도, 글도 다 없어지는 것인가? 한국을 떠날 때 모시고 있던 상사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한국은 잊어 버리게, 말도, 음식도, 사람도 미국 사람들과 같이 되도록 해야 성공을 하네"였다.



그 후 우리 네 식구가 한국 이름 앞에 하나씩 미국 이름을 붙인 미국 여권을 들고 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만 해도 도착승객 명단을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족이 열람할 수 있는 때였다.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계시던 형님이 명단을 보니 분명히 변씨로 네 사람이 있는데, 우리 첫 이름이 다르니 어찌 된 것인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우왕좌왕하다가 만나니 반가웠고 나는 좀 우쭐한 기분에 "가족은 모두 미국 여권이고 미국 이름으로 바꾸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형님 표정이 굳어지시고 입을 다물고 계시다가 "이 놈들아 이름까지 바꿨어?" 하셨다.

성경에 예수님의 수제자가 베드로(Peter)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 나는 내 이름이 피터로 불리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한가지 기억은 루스가 언제인가 사무실에서, 내가 급한 성격에 왔다 갔다 하니까 하는 말이 "꼭 피터같구나"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는데, 나는 3천 번은 더 부인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어도, 예수님이 그 베드로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 피터도 사랑하시면서 베드로에게 한 부탁을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하고 계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이름이 피터인 것이 자랑스럽다.


변성수 / 연방 및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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