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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일소행(日少幸)

무심한 사이에 엄청난 손해를 본다면? 거기다 그런 손해를 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보통, 아프지 않고 인생 80년을 산다면 '26년은 잠, 21년은 일, 9년은 먹고 마시고, 웃는 시간은 겨우 20일. 그에 비해 화내는 데는 5년, 기다림에 3년을 소비한다'는 계산을 본 일이 있다. 이 계산대로라면 인생이 참 너무 허무하다. 그렇게 열심히 힘겹게 살아왔는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은 웃고 행복한 시간은 고작 일생 중에 20일이라니!

우리가 커다란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바삐 지나는 사이에 자칫 일소행(日少幸: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은 우리 곁을 무심히 지나가버린다. 일소행은 마음먹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난 이런 보석같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우리 주위에 널린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면서 무심히 지내온 것을 후회한다.

20여 년 머리맡을 지키는 작은 자명종은 얼마나 고맙고 귀여운지! 밤새 피곤과 씨름한 몸에 갈증을 적시는 생수 한 컵은 또 얼마나 시원한가! 창문을 열고 숨을 깊이 쉰다. 담장의 핑크 재스민의 꽃향과 레몬 나무의 수향과 풀 냄새 섞인 아침 공기가 달고 신선하다. 밤에는 도시의 소음도 활기차다. 맑은 물 콸콸 쏟아지는 상수도, 구정물 쑥쑥 빠지는 하수도도 마냥 고맙다! 아침 인사 건네는 목소리들 정겹다! 시장기 달래는 소찬도 달다.



거울을 보고 씽긋 웃어본다. 하루 종일 그렇게 웃으리라. 내가 웃으니 모두가 나를 따라 웃는다. 하늘도 구름도, 나뭇잎도 풀잎도, 꽃은 물론 내 눈길이 머무는 빛을 받은 모든 사물이 반짝이며 웃는다.

지금 우리는 예전엔 황제라도 누리지 못했을 큰 복을 일상으로 누리고 산다. 음식만 해도 사철을 안 가리고 지구촌 각 나라 음식과 과일을 다 섭렵하며 즐긴다. 문명의 이기로 누리는 편리함은 또 어떤가? 말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음에도 왜 우리는 바라는 것들이 여전히 많고, 불만족하며 불안해하는 것인지.

커다란 상자를 하나 준비해두고 소원들을 넣어두기로 했다. 큰 소원은 기도 칸에 넣고, 먼 후일은 계획 칸에 넣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때때로 솟구치는 분노는 믿음 칸에 넣어두기로 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들은 이 상자에 넣어두고 시간이 무르익고 맛이 숙성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오늘의 일소행들을 열심히 주워담으며 히죽 해쭉 웃으리라. 발품을 팔지 않고도 아이패드로 지구촌 구석구석의 절경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여행한다. 한국의 형제를 화상통화로 대화하고 영국 황실의 결혼식을 초대받은 것보다 더 편히 구경한다. 인류 역사 이래 이렇게 큰 복을 누리는 세대가 있었던가?

먼데 행복만을 바라며 안달하지 않기로 했다. 눈길을 돌려 이미 손안에 들어있는 행복들을 온전히 누려야겠다. 일소행들을 무심한 사이에 놓치지 말고 거두어 꼭꼭 곱씹어 맛 보며 살아야겠다.


민유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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